
[토요경제=최봉석 기자] 불과 한 달 전 기준금리 인하조차 머뭇거렸던 한국은행이 2일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첫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뜨겁다.
코로나 사태가 기업·가계 등 실물경제를 붕괴시키고 곧바로 금융시장으로 전이되는 전방위적 위기로 이어지면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까지 벼랑 끝 위기로 내몰리고 있지만 한은은 그간 미온적인 대처와 안일함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결국 이번 사태가 갈수록 악화일변도로 치닫고 실물경제는 침체에 들어가는 미증유(未曾有)의 현상이 벌어지면서 혈액(돈)이 말초혈관(소상공인·자영업자)으로 돌지 않는 작금의 상황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공개시장운영의 일환인 RP 거래는 한은이 시중 유동성을 관리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이른바 '0%대' 금리시대의 포문을 열었던 한은은 이날 "시중에 유동성(자금, 돈)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은행과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RP 매입 입찰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펼치는 양적완화(QE)와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에 금융권 안팎에선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양적완화란 기준금리 수준이 이미 너무 낮아서 금리 인하를 통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중앙은행이 다양한 자산을 사들여 시중에 통화공급을 늘리는 정책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없이 공급하는' 주단위 정례 RP 매입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RP(repurchase agreement)란 채권발행자가 일정 기간 후에 금리를 더해 다시 사는 것을 조건으로 파는 채권으로 '환매조건부 채권' 또는 '환매채'라고도 한다. 주로 금융기관이 보유한 국공채나 특수채·신용우량채권 등을 담보로 발행하기 때문에 '환금성'이 보장되며 경과 기간에 따른 확정이자를 받는다.
통상적으로 중앙은행이 RP를 매각하면 시중 자금을 흡수하고, RP를 매입하면 자금을 공급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즉 한은이 '무제한으로' RP를 매입하게 될 경우 그만큼 시장에 유동성이 풀린다는 의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앞서 지난 26일 "일정 금리 수준에서 시장의 자금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하는 주 단위 정례 RP 매입 제도를 3개월간 도입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하지 않았던 전례 없는 조치라는 점에서 우리 경제가 당시보다 더 심각하게 휘청거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한은의 무제한 돈풀기 결정으로 실물경제 위기가 금융시장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한은은 매주 화요일 정례적으로 RP 매입 입찰을 한다는 방침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기업의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인 까닭에 이달 첫 입찰 일정에 한해 목요일인 이날 실시하기로 했다.
특히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추가 증거금 요구(마진콜)에 대응하고자 기업어음(CP)을 대거 시장에 내놓으면서 단기자금시장의 불안이 커졌다.
첫 입찰, 5조 2천500억원 공급했다

일단 한국은행이 무제한 유동성 공급 방침을 발표한 뒤 실시한 첫 입찰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금융사들의 요청자금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돈을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다는 방침을 천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금 조달과 관련한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으로, 이에 따라 다음 주 화요일로 예정된 다음 입찰 결과도 지켜봐야 유동성 위축에 따른 기업들의 우려가 어느 정도인지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무제한 돈 풀기'를 개시한 첫날 오전, 시중에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은행과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입찰을 실시한 결과 5조 2천500억원이 응찰했다면서 이 금액 모두 공급한다고 밝혔다. 만기는 91일이며 금리는 기준금리(연 0.75%)와 유사한 연 0.78%로 결정됐다. 이번 응찰에는 33개 RP대상 기관 중 증권사를 중심으로 15개 안팎의 기관이 참여했다.
한은은 7월 이후 그동안 입찰 결과, 시장상황 등을 고려해 이번 조치의 연장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한은은 통화안정증권 수익률과 한은의 직전 RP 매입 평균금리, 증권사의 RP 조달금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리 수준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은행이 지난 달 30일 발표한 ‘2019년 단기금융시장 리뷰’에 따르면 환매조건부채권(RP)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17조 2000억원, 기업어음(CP) 24조 1000억원 늘어 단기금융시장 성장을 주도했다. 단기사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 시장의 규모도 각각 8조 8000억원, 4조 5000억원 늘었다.
한은은 "RP 시장에 리스크 요인이 있다"며 "정부의 개선조치가 시행되면 다소 경감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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