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이 넘어서는 안 될 聖域

정해용 / 기사승인 : 2010-03-29 10: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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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이 넘어서는 안 될 聖域


중국의 <삼국지연의>는 밤새 읽어도 질리지 않을 기묘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웅호걸들 사이의 전투 장면들도 볼 만하지만, 이런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책사들이 꾸미는 다양한 전술전략과, 신출귀몰한 은 계략들은 순간순간 무릎을 치게 한다. 그 뿐인가 삼국지연의를 奇書로 불리게 하는 데는 인간 상식을 넘어서는 신묘한 인물들의 등장도 한 몫을 한다.
패권을 다투던 위, 촉, 오, 삼국 가운데 吳나라는 손권에 의해 세워졌으나, 앞서 나라의 기틀을 세운 이는 아버지 손견이었다. 본래 손견에게는 손책이란 아들이 있었고, 손책은 아버지의 뒤를 이은 20대에 이미 강동지역을 장악한 영웅이다. 원술과 연합하여 중원 진출을 꾀하려 하였으나 자객의 기습을 받아 상처를 입은 뒤 병들어 요절하고 결국 국권을 동생 손권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손책이 상처를 입은 직후 있었던 기묘한 일화가 삼국지연의에 기록되어 있다.
손책이 다친 무렵에는 그의 운명이 이미 기울고 있었던지 나라에도 가뭄이 들어 기근이 심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손책은 원술과의 연합을 모색하고 추종자들이 전쟁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민심은 그를 따르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침 지역에 괴상한 노인 하나가 나타났는데, 긴 옷을 입고 지팡이 하나를 들고 다니는 도인이었다. 노인의 이름은 ‘우길’이라 하였고, 천하를 떠돌면서 전쟁과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었다. 사람들은 우길을 신선으로 여겼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백성들이 군주를 무시하고 왠 괴짜 선인에게 몰리는 것을 손책은 괘씸하게 생각했다. 스스로 소외감을 느꼈고, 우길을 향해 불같은 질투심이 일었다.
“당장 잡아들여라.” 참다못해 손책은 명령했다. 끌려온 우길은 어떤 법을 어겼다고 특정하기 어려운 깨끗한 선인이었다. 정치에 의해 소외돼있는 백성들을 위해서는 오히려 손책 자신보다 베푼 일이 많아서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해야 하는 손책은 그에게 ‘혹세무민’이란 죄목을 씌워 중죄인으로 만들었다. 그를 죽이려 하자 신하들이 걱정했다. 가뜩이나 민심이 흉흉한데 백성의 신망을 받는 선인을 죽이는 것은 오히려 惡手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군주를 달래어 말하기를 “때마침 가뭄이 심하여 나라가 불안하니 우길에게 비를 내리게 하라고 명하소서. 만일 명령대로 한다면 그가 신선이라는 주장은 진실일 테고 그러지 못한다면 필경 거짓 선인이니 그때에 가서 죽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우길이 기도하여 비가 내리고 물난리가 날 지경이 되자 사람들은 이제 우길이 살아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손책의 마음은 이미 완고했다. “비는 하늘이 내리는 일이지 어찌 저 노인네가 한 일이겠느냐. 당장 목을 베어라.” 우길은 죽었고 흉흉하던 민심은 더욱 이반되었다. 백성과 측근들로부터도 소외된 손책은 곧 미치광이가 되어 밤마다 우길의 꿈을 꾸다가 죽고 손권이 그 뒤를 이었다.
꾸며낸 얘기 같지만, 이 비슷한 얘기는 기독교의 구약성서에도 나온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왕과 정치권력을 향해 쓴 소리를 계속하던 신의 예언자 엘리야가 마침내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당신은 하늘을 등지고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일갈했다. 당연히 군대를 가진 정치권력자 아합은 예언자를 죽이려고 했다. 그를 ‘사이비 성직자’라고 인신공격도 했을 것이다. 그러자 엘리야는 아합의 사제들(거짓 예언자들)과의 대결을 제안했다. 갈멜이라는 산에 올라가 각 뜬 송아지를 한 마리씩 놓고 신의 힘으로 불사르는 대결이었다. 아합이 자신을 지지하는 사제들 수백명을 동원했고 그들은 자기 몸을 찍어가며 기도했지만, 신의 응답은 홀로 기도하는 엘리야에게만 내렸다. 아합의 간사한 측근들은 백성들에게 끌려가 죽었고 왕은 도망쳤다. 엘리야는 오늘날까지도 아브라함과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숭앙받는 3대 선지자 가운데 하나다.
정치권력이 종교적 권위에 의해 견제를 받는 것은 필연적이다. 총칼의 힘으로 절대화할 수 있는, 오늘날 같으면 법이니 언론이니 하는 것을 장악하여 국민을 통제하고 강압할 힘을 가진 절대권력이 등장한다면 누가 감히 시시비비를 가려 그 권력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신의 권위를 입어 목숨 아끼지 않고 입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종교인이거나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집권당의 핵심 인물이 종교에 대해 노골적인 간섭을 하고 있다고 한 스님이 대중 앞에 고발하고 나섰다. 그는 정치권력이나 돈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도 일관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올곧은 소리를 해온 명망 있는 종교인이기에 그의 주장이 호소력을 얻고 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정권은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있는 것이다. 자제해야 한다. 백성들 위에 권력이 있다면, 그 위에는 참과 거짓을 하등의 오차 없이 내려다보는 하늘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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