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어느 음유시인의 운명

정해용 / 기사승인 : 2011-12-26 13: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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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시인이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아는 것이 많고 생각이 깊은 은유시인으로서, 나라의 왕에 의해 왕자를 가르치는 스승으로 임명되었다. 시인은 왕자에게 역사와 철학과 문학을 가르쳤으며, 무엇보다 국가의 운명에 대한 책임과 백성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중요함을 일깨워주었다. 왕자는 총명과 패기를 지닌 젊은이였다. 시인의 가르침으로부터 감동을 받은 그는 부유한 나라, 행복한 백성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리라 마음을 다졌다.
과연 왕자가 국정에 참여한 이래 나라는 날로 부강해졌다. 왕자는 나라가 동방과 서역을 잇는 중간지대에 위치한 이점을 잘 이용하여 동서무역의 중계거점이 될 도시를 건설했고, 그 결과 나라는 큰돈을 벌어들였다.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로부터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모여들어 이 도시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농사를 짓던 백성들이 하나둘 도시로 몰려들어 상업에 종사했다. 사실 따로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었는지 모른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외국의 농산물을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보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더 풍족하게 각종 농산물을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예전 같으면 구경하기도 어려웠을 진귀한 외국의 과일과 채소, 각종 육류와 진귀한 생선, 술과 차, 향신료, 그리고 신기한 공산품들이 시장에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다. 이것을 손에 넣는 데 필요한 것은 농사지은 물건이 아니라 돈이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총명한 왕자 덕에 나라가 부유해진 것을 기뻐했고, 그가 새로운 통치자가 되는 것을 모든 찬사를 동원해 환영했다. 노쇠한 부왕으로부터 왕위를 승계받던 날, 왕자가 주최하는 잔치는 매우 성대하였다. 술과 음식과 음악이 넉넉하게 진설되었지만, 아무래도 잔치는 ‘말’이 있어야 품위가 높아지는 법이다. 나라 안에서 가장 이름 높은 세 사람의 시인(詩人)이 새 왕의 대관식에 초대되었다. 그 중 하나는 중요한 행사에 빠지지 않고 초대되는 가장 유명한 계관시인으로서, 화려하고 웅장한 어휘로 청중을 매료시키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었다. 과연 그가 새 왕의 성덕을 칭송하며 그로 인하여 나라가 부요해진 것은 얼마나 큰 신의 축복인가를 장중한 목소리로 읊어나가자 백성들은 크게 감동하여 ‘아무렴’을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눈물을 지으며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인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하늘이 내신 이를 새 임금으로 맞이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무한한 번영이 있으라.”
노래 한 곡을 들은 후에 두 번째 시인이 앞에 나왔다. 그도 유명한 시인인데, 사람들은 그를 민중시인이라 불렀다. 사실상 잔치를 주최하는 조정 대신들에게 탐탁한 존재는 아니었다. 도시가 발전하면 부자가 많이 생기지만, 그들 부자 밑에는 최저 임금으로 먹고 살며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민중시인은 그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시를 읊었다. 계관시인이 하늘의 축복을 노래할 때 소외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민중시인의 입에서 나오는 날카롭고 쩌렁쩌렁한 노랫말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누가 하늘을 거역하겠느뇨. 왕이냐 무사냐. 하늘은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 계시도다.”
그 뒤에 음유시인은, 무대 앞으로 나온 음유시인은 가만히 새 왕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왕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늘어서있는 대신들에게 눈기를 주지도 않았고 고개를 돌려 운집한 군중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오직 왕에게로 눈길을 향하며 시를 읊는데,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찌나 폐부를 정확히 찌르는지 곁에서 듣는 사람들마저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다.
“하늘을 나는 새는 둥지가 있어 알을 품는 것이고, 큰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는 알을 숨길 도초가 있어 번성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뿌리는 농촌이며 백성들의 고향은 농촌인데, 모두가 농사를 버리니 농촌은 폐허가 되고 있습니다. 인정에 굶주린 아이들의 영혼은 황폐해져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감각하지 못합니다. 나라의 미래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입니까. 아아, 우리가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면 미래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청중들이 술렁대기 시작하자 주최 측은 긴급히 근위대를 불렀다. 시집을 몇 권 팔아본 적이 없는 가엾은 음유시인이 근위병들에게 끌려나갈 때,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계관시인이 다시 큰 목소리로 ‘위대한 백성’이란 시를 읊자 군중은 다시 감동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꾸며낸 얘기가 아니다. 저 옛날 이집트의 현자 이솝이 이미 남겨놓은 이야기다. 어느 시대나 수구파와 개혁파가 있고, 그들의 소리는 어느 쪽이든 또렷하며 선동적이거나 감동적이어서 쉽게 그 어느 편인가의 공감을 얻어낸다. 그렇다면 음유시인은 어느 편일까. 좌와 우가 설전을 벌이거나 그 상대편을 극도로 탄압할 때 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중도파? 아마도 그 중도의 대다수는 보신을 택하는 회색 보신주의에 속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사회에 대한 책임감으로 입을 열기 시작한 중도파 지식층들의 소리는 이 용기 있는 음유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새 왕이 진정 현명한 왕이라면 우와 좌의 큰 목소리가 아니라 그동안 조용했던 중도 지식인들의 우울한 나라걱정에 반드시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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