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소재가 항시 금기였던 건 아닐 것이다. 지금 시대에 첨예하게 드러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되었다.
이 같은 사회적 파벌의 간격은 좌와 우로 벌어지더니 바야흐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사회가 이렇게 된 원인이나 책임소재를 규명할 겨를도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계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모든 언행이 부당하며 썩어 있다. 그러므로 이 기득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상실감과 분노를 매개로 굳게 뭉쳐야 하며 더 이상 세상이 썩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가능하다면 일제히 궐기하여 혁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가하면 그 상대편 쪽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모인 대화에서는 사회의 문제가 전혀 다른 데 있다. 사회를 안정시키고 있는 기득 체제에 도전하고 반대하는 무리들은 사회 안정은 물론 국가체제의 안보에도 위협적일만큼 무책임하고 파괴적으로 규정된다. 이것은 좌파적이며, 좌파적이란 곧 북한과도 내통하고 있을 것만 같은 빨갱이 집단이란 의미다.
한쪽에서는 공식행사에 참석한 서울시장을 폭행한 노인을 향해 ‘한심한 수구꼴통’이라며 혀를 차는데, 다른 한쪽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후련하다’며 박수를 친다. 유신시대 같은 감시 통제집단이 따로 있지 않아도 국민들 스스로의 분열로 인해 어디서든 정치적 입장을 마음 놓고 말하기 어려운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분열은 이제 올만큼 왔다.
그 원인과 책임소재를 여기서 굳이 따지지 않으려는 것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런 논의 자체가 분열의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 같은 분열 자체가 갖는 심각한 위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세기 우리나라는 영조 임금의 시대였다. 영조의 치세는 철저하게 탕평(蕩平) 하나에 맞춰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정의 의견은 늘상 대립되고 있었는데, 대립의 기준은 논의의 타당성이나 적절성에 대한 의견차이가 아니었다. 어떤 정책을 내놓으면 이것이 국리민복에 도움이 되며 현실적으로 타당하고 효과적인 정책인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이 의견을 낸 사람이 누구냐를 먼저 따졌다. 그 사람이 내 편이면 무조건 지지했으며,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하는 식으로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그 바탕에 바로 사색당파로 불리는 파벌이 있었다.
나라살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급기야는 살림 정도가 아니라 국운이 흔들렸다. 다 알다시피 선조 때 일어난 임진왜란을 앞두고 조정에서는 왜국에 통신사를 보내 정황을 탐지하게 하지 않았던가. 서인과 동인을 각기 대표하여 황윤길과 김성일이 왜국을 다녀온 후, 정사 황윤길이 심상찮은 왜국의 침략 위험성을 보고하자 동인인 김성일은 감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하였고, 이 두 사람의 상반된 보고를 동인과 서인은 각기 자기 당론으로 삼아 허구헌날 논쟁만 일삼다가 나라와 백성들은 끝내 7년이나 되는 길고긴 참화에 휩싸이고 말았다.
지금 시대가 참으로 심각하다. 국가적 사업은 말할 것도 없고 국운이 걸린 외교정책이나 안보관에 있어서도 사람들 사이에는 일관된 대립의 띠가 존재하고 있다. 논리적 합리적 논의의 여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돌파구는 어디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인가.
임진왜란 때 백성들은 임금이 도망친 후 경복궁으로 몰려가 왕궁을 불태우는 것으로 분노를 표출했을 뿐, 다가오는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힘은 없었다. 요즘 여도 야도 아닌, 기존 정당들에 대해 똑같이 불신감을 지닌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세력화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와 관련이 없던 사람들이 등장하여 기존 정치인을 물리치고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기존 정치인들보다 한층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된다. 동인도 서인도 아닌 무당파(無黨派) 시민세력의 등장이 벌어질대로 벌어진 우리 사회 분열의 간격을 메워 나라를 극한적인 내분상태로부터 구하는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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