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물가조사기관은 서울의 전통시장을 기준으로 올해 김장 재료값을 조사한 결과 4인 가족 기준 21만2700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녹록치 않은 비용이다. 올해는 특히 양념류 값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겪는 김장재료값에 대한 부담은 당장 오랜 전통의 김장문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소비자들 사이 김장철이면 대형 유통마트를 통한 포장김치 구입이 유행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농촌의 배추 생산지와 사전예약을 통한 직거래도 활발하다. 또 편의성 때문에 배추를 직접 사서 담그지 않고, 절임배추와 양념속을 사서 담그는 가정도 늘고 있다. 그저 한 푼이라도 아껴볼 마음에 쏟는 주부들의 정성이 눈물겹다. 이렇게라도 김장을 하겠다는 가정이 아직 많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비용상승, 핵가족화와 김장의 번거로움 등을 이유로 김장을 아예 포기하는 가정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한 대형마트가 고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 ‘김장 의사’를 묻는 설문에서 10명중 4명이 ‘김장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김치 담그는 일을 고역으로 여기다 보니 전통의 김장문화마저 실종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김장은 가족의 식단에 없어서는 안될 한해 먹거리 김치를 만드는 행사다. 사전에는 김장을 ‘겨울을 대비하여 김치를 담그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고려시대 문헌인 〈동국이상국집>에는 “무를 소금에 절여서 구동지에 대비한다”고 소개할 정도로 우리 민족의 김장의 역사는 깊다. 오늘날과 같은 김장법의 원류는 조선 후기에 수입된 고추가 조미료로 사용될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한다. 배추를 절여 고추 파 마늘 생강 같은 각종 양념에 버무려 지금처럼 붉고 매운 김치를 담궈 먹기 시작한 것이 17세기 얘기다. 김치는 오랜 역사에 걸맞게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떼레야 뗄수 없는 음식, 김치는 김장을 통해 얻는다. 필자의 기억에 김장은 크고작은 집안일 중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왜 아니겠는가. 1년 동안 밥상에 올라갈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이니 그만큼 공을 들일 수밖에. 어머니는 가장 손이 안타는 날을 잡아 의식을 치르듯 김치 담그는 일에 신경을 썼다. 김장 전날이면 노란속이 꽉 찬 튼실한 배추를 거두어 일일이 소금에 절이고 물기를 뺐다. 다음날 물을 뺀 배추에 무채와 함께 온갖 양념으로 버무린 배추속을 배추잎 사이사이에 집어넣었다. 지방색이나 집안의 기호에 따라 각종 젓갈이나 굴, 돼지고기 따위를 푸짐하게 넣기도 한다. 이런 부재료들은 김치맛을 더 풍성하게 하고 감칠맛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전라도 지방은 김치 담글 때 사용하는 젓갈도 다양한 게 특징이다. 멸치젓은 기본이요 유월에 잡아들인 새우젓에 황석어젓까지 넉넉히 사용한다. 김치에 넣을 젓갈은 미리 적당시간 끓여 촘촘한 체로 큰 가시를 골라내 사용하는데, 그 냄새가 처음엔 비릿하다가 나중에는 구수해지며 맛깔스러움을 더한다. 김치 종류만도 배추김치는 기본이요 커다란 알타리무김치와 동치미, 갓김치, 파김치, 고들빼기김치까지 다양하다. 필자는 그 중에도 눈 내리는 한겨울 장독뚜껑을 열어 꺼내먹던 살얼음 낀 동치미를 잊지 못한다.
이날 아버지는 일찍부터 뒷마당 한켠에 땅을 파뒀다 김장김치가 차곡차곡 담긴 커다란 김치독을 묻는 일을 맡고, 수고의 댓가로 어머니로부터 막 담근김치에 푹 익은 돼지고기 수육과 막걸리를 상으로 받았다. 필자 역시 그 옆에서 양념이 잔뜩 버무려진 노란 배추속잎을 입안에 넣는 호사를 누렸다.
김장하는 날 집안은 품앗이로 모여든 동네 아낙들로 잔칫날처럼 복작댔다. 김장하는 내내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집안일과 동네일을 화제 삼아 정겨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그 이야기는 김장이 끝날 때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김장이 끝나면 그날 담은 김치 몇 포기씩을 서로 나눠먹는다. 그때의 김장은 단순한 음식 만들기를 뛰어넘어 세대와 세대, 가족과 이웃간을 잇는 소통과 나눔의 장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물결에 정겹던 김장문화가 사라지고 있어 씁쓸하다. 그나마 일부 자선단체와 기업들의 김장나눔 행사가 있어 위안이 된다. 김장문화는 각박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꼭 지켜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올가을 배추 몇 포기 구입해 김치를 담궈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이 먹을 안전한 김치도 얻고, 전통시장도 살리고, 김장문화의 의미도 되새겨보는 일석삼조의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