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 여성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일은 일반인들의 관심 밖이거나 자칫 “너는 성매매를 옹호하는 것이냐”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기에 딱 알맞은 주제다. 심지어 당사자인 성매매 종사 여성들에게는 최소한의 발언권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2004년 집창촌 여성들이 벌인 성매매특별법 반대 집회에 대해 여성부 장관은 “그들은 ‘사회적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져 있다”며 성매매 여성을 ‘포주의 인질’로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의 저자 강준만 교수는 프랑스 철학자 엘리자벳 바댕테르의 말을 빌려 꼬집는다. “매춘부들을 ‘절대적 희생자’로 보는 시각은 그들을 침묵하게 한다.
일반 여성의 단 한마디가 금과 같은 가치를 같은 데 반해, 매춘부의 말은 한마디 가치도 없다. 매춘부의 말은 대번에 거짓이나 조작된 것으로 간주한다.”
매매춘을 보는 대한민국의 왜곡된 시각
이러한 왜곡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강준만 교수는 “논하기에 앞서 ‘매춘’이 아니라 ‘매매춘’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는 말로 글을 시작한다. 그는 “매춘이란 ‘몸을 파는 사람’과 ‘몸을 사는 사람’이 있을 때 성립하기 때문에 둘 모두 똑같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러한 용어 선택에서부터 매매춘을 바라보는 시각은 성을 파는 매춘부들에 대한 몰이해를 불러왔고 성을 사는 사람보다는 성을 파는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매매춘에 대한 이러한 인식 왜곡의 원인을 찾아 한국 근현대사를 더듬는다.
기지촌 양공주부터 ‘미아리 텍사스’까지
매매춘 장려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화류계까지 친일화 공작의 대상으로 삼았던 일제 통감부의 공창화 정책부터, 1960년대 군사정권이 수출·국방 정책으로서 매매춘을 장려했던 시기를 거쳐 1980년대는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할 정도로 한국의 매매춘 사업이 호황을 구가한다.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기생 관광’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고, 우리 사회는 ‘티켓 다방’이 급증하고 성인 영화가 범람하는 등 도색이 판치는 곳으로 변해갔다. 이러한 기세는 1990년대에 이르러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 등을 중심으로 한 영계촌 인터걸 원조교제의 시대를 거쳐 ‘성매매 유비쿼터스’의 시대인 2000년대에 이른다.
‘포주’로 나선 국가, 한국 매매춘의 실체
‘성매매특별법’은 시행 8년째를 맞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집창촌 단속은 오히려 이들이 음지로 숨어드는 ‘풍선효과’만 낳았다. 덕분에 오늘날엔 더욱 음지를 향해갔고, 더욱 게걸스러워졌다.
저자는 “도덕적 분노로 밀어붙였으면 이를 관철하기 위한 충분한 뒷받침이 있어야 했는데, 달랑 분노뿐이었다”고 지적한다. “양지에선 근엄, 음지에선 게걸”의 이중성이 도드라지는 한국이다.
오랜 기간 외국 군대의 주둔을 허용한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에서 시작해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때론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때론 정치적 명분을 위한 정략적 용도로 이용된 매매춘은 그렇게 긴 세월 동안 한국 사회와 동거해왔다. 거기에는 국가의 폭력과 인권 문제, 국가 정책의 문제까지 아우르는 맥락이 담겨 있다. 강준만 저, 1만2000원, 인물과사상사.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