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경험과 성장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잘 하던 사람도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흔들림이 생긴다. 당장의 고통과 기회비용 손실만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의 미래마저도 이미 상처를 받는다. 맞고 사는 아내의 많은 수가 성장기에 아버지로부터 맞고 자란 경우가 많다고 분석되는 것은 왜이겠는가.
이러한 프레임을 확대하여 국가사회에 적용해 보아도 현상은 비슷해질 것이다. 국가 또한 이해관계에 의해 결합된 사회단위가 아니라 혈연이나 지연에 의해 자동적으로 맺어지는 공동운명체라는 점에서 가정과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2006년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감독 F. H. 폰 도너스마르크)이라는 영화는 과거 동독의 공산정권 아래서 일어났던 국가폭력의 단면을 다룬다. 비밀경찰인 비슬러(율리히 뮈헤 분)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인 게로르그 드레이만(세바스티안 코치 분)과 그 연인 크리스티나 살란트(마르티나 게덱 분)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드레이만의 집 맞은편에 비밀주택에서 상주하며 망원경과 도청장치를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이다. 감정이 건조된 인간, 냉혈한 ‘슈타지’(비밀경찰) 비슬러는 드레이만 커플의 사생활을 엿보면서 그들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톱 여배우인 크리스티나에게 권력을 쥔 문화장관이란 자가 치근거리며 급기야 겁간한 사실까지. 두 사람을 동시에 엿보면서 비슬러는 그들에 대하여 당사자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부도덕한 정권의 치부까지도. 극작가 드레이만은 자기 집에선 결코 도청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자신하지만, 친구들의 권유로 실험적인 거짓 스케줄을 잡는다. 그리고 나가보니 정말로 비밀경찰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안전지대가 없음을 확인한 그들은 자기 서재 안에서조차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소곤거리거나 중요한 일은 연필로 써서 필담을 나눈다. 자기 집 안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한 삶 - 이것이 바로 감시가 일상화된 전제국가 시민들의 삶이었던 것이다.
비슬러로 상징된 비밀경찰은 사실 동서고금의 모든 독재정권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일제의 식민통치기로 시작하여 남북한 할 것 없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도 그런 역사가 있었다. 다행히도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마침내 민간을 사찰하는 비밀경찰이 사라진 것만 해도 우리는 이 나라가 비로소 대명천지의 민주국가가 됨을 감동적으로 자축하였던 것이다.
최근 국무총리실에 설치된 감찰기구에 의해, 공직자 기강 감찰 차원을 넘어 민간인에 대한 불법한 사찰이 이루어진 사건이 온 국민을 경악케 하고 있다. 그 사찰이 특히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중 행사됐다는 혐의는 더욱 놀랍다. 공무원으로 조직된 공적 기구는 국민을 위한 기관이지 특정한 정파나 정권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이것은 좌파나 우파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지켜야만 할 대전제다. 만일 정부기구가 정권보호 목적으로 사용되어도 괜찮다면 공무원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색깔을 바꾸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행정부나 사법부를 비롯하여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군 등 모든 공적 기구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엄격히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당인 새누리당 내부라 할 수 있는 비상대책위의 이상돈 위원이 5일 이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경계했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정치사찰과 그에 대한 은폐 시도는 그의 말처럼 ‘법치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훼손’이다. 그런 일은 필시 대상자에 대한 협박이나 폭력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 누가 민주주의를 그만 두고 (사실상의)비밀경찰이 활개치는 8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 있던가. 그게 아니라면, 민간사찰이나 정치인 사찰 같은 일이 다시 되풀이 되는 것을 여야를 막론하고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해용 상임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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