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전이다. 월스트리트에 20~30대의 젊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를 행진하며 미국 금융경영자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부실한 운용으로 금융위기를 자초한 장본인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뱃속만 채우고 있다며 이들의 탈법과 불법을 기소하라고 외쳤다. 이들의 피켓에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가 적혀 있었다. 일주일이 지난 24일 시위인원이 일시에 3천명이나 됐을 때 경찰이 전자총, 후추스프레이 등 장비를 이용해 진압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인원만 80명이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시위대가 아니었다. 인근 공원에 진을 치고 밤새워 시위를 이어갔다. 초기에 밤을 새는 인원이 3백 명 쯤이었다. 그 인원은 계속 늘고 있다. 월가에서 겨울을 날 다짐으로 준비중이라 한다.
때마침 유럽에서도 경제위기에 해법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스페인의 청년들이 수도 마드리드에서부터 EU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까지 1천5백 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걸어왔다. 16일부터 열리는 유럽정상회의에 항의요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걸린 시간만 75일이었다 한다. 이들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 인디그나도스)의 시위에는 유럽 각국의 젊은이들이 뜻을 같이 해 동참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경제위기라는 공통의 문제로 각기 시작된 시위는 곧 연대를 이뤘다. 잘 발달된 소셜 네트워크(SNS)가 교량 역할을 한다. 미국과 유럽뿐 아니다. 세계 각국 청년지식인들이 있는 모든 나라로 파장은 번져가고 있다. 뉴욕에서 최초의 시위가 일어난 지 한 달. ‘점령 시위’는 서울 동경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도시로 파급되었다. 관련 인터넷 사이트 등의 소개에 의하면 10월 세째 주말 전 세계 1천2백 이상의 장소에서 열렸다. 나라마다 구체적 이슈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바로 부자들의 이기심에 대한 반감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된 <컴퍼니 맨>(company man)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대량 해고가 이루어진 미국 기업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목을 직역하면 ‘회사인간’쯤 될까. 아직 젊은 바비(벤 애플렉)는 대형 조선회사의 전도 밝은 엘리트 회사원이다. 자기 돈으로 산 포르쉐를 몰고 주말의 골프와 파티에 맛이 들렸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에 뒤이은 금융위기로 연일 긴박한 구조조정 뉴스가 나오지만 그의 귀에는 추호도 들어오지 않는다. 구조조정, 퇴출, 그것은 어느 조직에나 있는 무능한 잉여인력에게나 해당하는 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는 자신에게도 구조조정의 바람이 닥친다. 책상머리에 앉아 해고된 동료들을 바라볼 때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던 배신감과 허탈, 그리고 당혹감과 무기력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하루아침에 3천명의 인원의 생산라인을 줄인 후 주가가 회복되어 오너 회장은 순식간에 몇 백만 달러의 이익을 얻는다. 창업 동료인 진의 주식도 올랐지만 그는 기쁘지 않다. 해고를 계속하는 대신 신축중인 새 사옥을 포기하자고 권하지만 회장은 듣지 않는다. 그에게는 사원을 구하는 일보다 새 사옥을 얻는 일이 이득이다. 끝내는 창업동지 진에게도 사직권고가 내려온다.
이 영화는 매우 현실적이다. 실제로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일어난 2007년부터 2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8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중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140만에 불과하다. 금융회사를 비롯한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수입은 미국 노동자 평균 임금의 3백배에서 4백배에 이른다. CEO의 급료가 비정규직 사원에 비해 1천배 이상 높은 회사들도 있다.
문제는 미국 대다수 대형 금융회사들이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4천억 달러 넘게 지원을 했는데 금융회사들은 아직도 다 갚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200억 달러 이상을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베풀었다.
“회사는 공적자금을 받아 살아가는데, 해고된 우리는 버려져 있다.”
월가 점령 시위를 시작한 청년들의 분노는 여기서 시작됐다. 이들의 주장에 70~80% 시민들이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9~10일, 시사주간지 ‘TIME’ 긴급 여론조사).
미국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실업자 구제와 경기활성화를 위하여 제안한 긴급 공공사업 등을 거부했다. 부자 감세 범위를 좁히려는 법안도 거부했다. 미국 내 1% 부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왜 나머지 99%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적 경기침체의 골을 벗어나는 데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미국에서도 그렇고 파산 위기에 직면한 유럽에서도 그렇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다는 이기심의 극복이 무엇보다 긴요한 관건으로 보인다. 양식(良識)이자 양심(良心)이 문제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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