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469주년…이순신 알리기 ‘돌입’

서승아 / 기사승인 : 2014-05-04 12: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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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수근 재건로’조성…초대형 걸개그림 광화문 등장

▲서경덕(맨 왼쪽) 성신여대 교수와 이상봉 디자이너가 KT광화문지사에 걸린 성웅 이순신 대형 걸개그림을 공개하고 있다.
[토요경제=서승아 기자] 지난달 28일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성웅 이순신’ 걸개그림이 광화문 KT빌딩에 걸렸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성웅 이순신’ 프로젝트 디자인을 맡았다.

이 디자인은 가로 25m·세로 50m의 대형 천 위에 난중일기의 내용을 붓으로 써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를 형상한 것으로, 국내외 시민 3만여명이 제작에 참여했다. 제작하는 데만 약 3개월 소요됐다.

이상봉씨가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를 디자인했고, 배우 조달환씨가 쓴 ‘이순신’ 한글 캘리그라피가 사용됐다.


이번 일을 기획한 서 교수는 “나라를 대표하는 영웅들이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면서 “‘안중근 의사’ 1탄 걸게그림에 이은 2탄 작품으로 한글이 전 세계에 널리 홍보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순신 장군의 걸개그림은 지난달 27일부터 광화문 KT빌딩에 걸렸다. 앞서 이들은 지난 2009년 가로 30m·세로 50m의 대형 천 위에 국내외 3만여명의 손도장으로 안중근 의사의 단지된 손도장을 형성화해 만든 걸개그림을 전시한 바 있다.


한편 이들은 당초 27일 걸개그림 제막식 행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국가적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고자 행사를 취소했다.

‘조선수군 재건로’ 역사·문화·생태관광자원까지 잡는다

앞서 전남도는 지난달 27일 ‘남도 이순신 길-백의종군로’에 이어 ‘조선수군 재건로’를 조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남도 이순신 길-조선수군 재건길’은 정유재란 당시 3도 수군통제사로 재수임된 이순신 장군이 칠천량해전에서 전멸한 조선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해남군 명량대첩지로 이동했던 곳이다. 대상지역은 구례·곡성·순천·보성·장흥·강진·진도·해남 등 8개 시·군 450㎞로, 도보길이 90㎞, 차도길이 360㎞다.


이 길은 이순신 장군이 군사와 무기, 병선 등을 모으면서 이동했던 곳으로, 정유재란 당시 수군 승리의 전기를 마련했던 지역이다. 전남도는 최근 ‘조선수군 재건로 안내시스템 구축 설계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오는 2015년까지 총사업비 39억원을 들여 조선수군 재건길에 역사·문화·생태관광자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길에는 출전장, 유숙·행적지, 조형물 등을 건립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전남도는 지난 해 11월 구례·순천지역에 119㎞ 구간의 ‘남도 이순신 길-백의종군로’를 개통했다.

전쟁 중 식량 확보 의지 서신 발굴

▲1593년 이순신이 상관에게 보낸 편지


이어 임진왜란 당시 현장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판단을 명확히 밝히고, 백성의 고충을 늘 생각하면서 전쟁 중에도 농사를 지어 식량을 확보하게 한 이순신의 철저함을 엿볼 수 있는 서신이 발굴됐다.


‘난중일기’ 교감완역본을 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충무공 탄생일(지난달 28일)을 앞두고 최근 출간한 ‘이순신의 리더십’ 개정판에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이 경상우도 순찰사 김성일에게 보낸 편지(사진)를 처음 공개했다. 이 편지는 경북 안동의 김성일 종가에서 소장하던 것으로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입수해 자료화했다.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김성일은 이순신에게 ‘화공을 사용해 왜구를 소탕하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이순신은 4월 1일 수군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판단을 정중히 밝힌 답신을 보냈다. 이순신이 2∼3월 웅포(지금의 경남 진해)에서 7차례 큰 승리를 거둔 이후였다.


“애초 생각은 진해가 부산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흉악한 적들이 요새를 지키고 나오지 않는데, 명나라 군사가 남하하는 날 수군을 거느리고 곧장 부산으로 가면 필시 후방을 돌봐야 하는 걱정이 들 것이므로 그때 이를 불로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형세는 명군이 오랫동안 지체하고 있으니 만약 저들의 배를 불사르더라도 배만 없앨 뿐이고 왜구는 잠시 멈추는 것입니다. 영감께서 알려주신 계책이 이러하니 어찌 시행될 수 있겠습니까.”


이순신은 명나라 군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화공을 쓰더라도 왜구를 소탕할 수 없으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리라고 판단해 이같이 반론했다. 그러면서 이런 심경도 털어놓았다. “석 달의 봄날이 이미 지나고 남쪽의 이랑은 적막하니 변란을 겪은 곳보다 더 심각합니다. 가까운 시일에 경내로 돌아가서 각 함선의 군사들을 씨 뿌리기에 진력하게 하고 명나라 군사들의 소식을 듣는 대로 즉시 바다에 내려가기를 꾀하고자 합니다.”(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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