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전현진 기자] 지난 4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는 ‘의약품 리베이트에 관한 의료계 입장 발표’를 통해 리베이트 근절을 선언하고 리베이트 쌍벌제 완화를 요구했다. 쌍벌제 규정이 개선되기 전까지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의료기관에 대한 출입을 일체 금지하는 운동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자정선언에 대한 제약업계의 입장은 싸늘하다.
정부는 의료계 자정선언에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 쌍벌제 완화 요구에는 “쌍벌제는 리베이트에 관대했던 의료계의 분위기를 바꾼 의미있는 제도”라고 주장해 사실상 거부했다.
◇ 의료계 ‘리베이트 근절’ 선언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의약품 리베이트 단절을 선언함과 동시에 리베이트 쌍벌제 완화를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는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명확한 단절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리베이트 쌍벌제는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 뿐 아니라 받은 의사도 함께 처벌하는 것으로, 2010년 1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도 리베이트가 완전히 근절되지 않아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계는 의약품 리베이트 단절을 선언하면서 리베이트 쌍벌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악의적인 리베이트 수수행위를 처벌하되, 제약회사들은 정당하게 영업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정부는 제약회사의 정당한 마케팅과 의사들의 정당한 연구참여까지 과도하게 금지하며 모든 의사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규정한 리베이트 쌍벌제 모법 및 하위 법령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면서 “선량한 의사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일은 중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 역시 정황적 증거만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며 ‘억울하면 소송하라’는 식의 행정처분을 남발하고 있는 바, 이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간 쌍벌제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던 의사들이 입을 연 까닭은 올해 3월부터 행정처분 요건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가장 민감한 것은 의사 면허자격정지 요건이다.
지금까지는 쌍벌제가 시행돼 리베이트 혐의가 적발돼도 의사 면허자격정지가 벌금액에 따라 결정돼 형사 처벌이 없으면 행정 처분이 불가능하게 돼 있었다. 위반 횟수에 대한 가중처분도 없었다.
반면, 이번 개정안에는 벌금액이 아니라 수수액에 따라 처분이 달라지도록 해 수사의뢰 없이도 행정처분을 바로 할 수 있게 바뀐다. 위반 횟수가 늘어날수록 면허정지 기간도 늘어난다.
이에 대해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행정처분을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음주운전도 객관적인 데이터를 측정한 뒤에 처벌을 결정하는데 리베이트 수수액에 따라 행정처분 하는 것은 술먹은 정황만 있으면 곧바로 면허 정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고 반발했다.
아울러 “더 이상 진료행위에 대한 부적절한 보상을 의약품 리베이트를 통해 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약제비 비중을 OECD수준으로 조정하고, 진료비 역시 OECD 수준에 맞춰 달라”며 진료비 인상을 요구했다.
의협은 “의약품을 선택하는 것은 의사의 권리이지만 의약품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은 의사의 권리가 아니다”면서 “의협은 향후 자체적인 윤리규정을 마련해 내부단속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쌍벌제 규정이 개선되기 전까지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의료기관에 대한 출입을 일체 금지한다고 천명하고, 의료계와 제약계가 편법이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진료와 경영에 매진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의ㆍ산ㆍ정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 제약업계 “의사들의 이중적 태도에 실망”지난 4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의 ‘의약품 리베이트에 관한 의료계 입장 발표’를 접한 제약업계는 실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약업계는 의료계의 자정 노력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그러나 쌍벌제 규정이 개선되기 전까지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의료기관에 대한 출입을 일체 금지하겠다는 엄포에 실망스럽다는 입장이다.
제약사 관계자는 “영업사원들이 의료기관 출입을 못하게 됐으니 이제부터 7만 영업사원들은 갈 곳을 잃었다”며 “심지어 제약사 영업사원을 개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일부 의사들의 태도에 자괴감을 느낀다. 이번 출입금지로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영업사원이 갈데가 없는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의사들이 과거에는 ‘달아서’ 영업사원을 만났지만, 이제는 ‘쓰니까’ 뱉는다”며 “늘 약자인 영업사원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 이젠 새삼스럽지 않다”고 밝혔다.
제약사 영업 담당자는 “얼마전 특정 제약사 영업사원과 개를 출입금지 시킨다는 모 의료기관의 문구를 접하고 영업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며 “영업사원들이 갈 데가 없는 나라는 아마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 “쌍벌제, 리베이트 감소 효과있다”
의약품 처방 대가로 불법 리베이트를 받지 않겠다고 공개 표명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의 자정선언에 대해 정부는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쌍벌제가 리베이트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정경실 의약품정책 과장은 “쌍벌제는 리베이트에 관대했던 의료계의 분위기를 바꾼 의미있는 제도”라며 “시행된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만큼 제도의 효과를 충분히 거두기 위해서는 방향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벌금액이 아니라 수수액에 따라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의사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정면 반박했다.
정경실 과장은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은 각각 다른 기준에 의해서 적용되는 것이 정상이다. 오히려 사법적 결과에 따라 행정 처분이 달라지는 것은 법리상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실제 쌍벌제는 상당한 리베이트 감소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1월 7일부터 12월 6일까지 제약회사 영업 및 마케팅 담당 직원을 대상으로 쌍벌제 시행과 관련해 법 개정 전후 변화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쌍벌제의 효과가 상당부분 입증됐다.
우선 응답자의 91.7%가 쌍벌제 시행 이후 거래처 의사 및 약사의 리베이트 요구가 줄었다고 대답했으며, 97.5%가 자사인 제약사의 리베이트 비용이 줄었다고 답했다.
입법조사처는 “설문조사 결과 쌍벌제 관련 법 개정의 효과가 약가인하 조치에 비견될 만큼 효과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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