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 매 자살…네티즌들 “남겨진 아이들은?”

전현진 / 기사승인 : 2013-01-11 14: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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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으로 생 마감한 故 조성민

[토요경제=전현진 기자] 아마야구 국가대표 간판 투수→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톱스타 최진실과 결혼ㆍ이혼→자살.

▲ 지난 7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조성민의 빈소에 놓인 영정 속에서 고인이 활짝 웃고 있다.

야구스타 조성민(40)의 삶은 파란만장했고 마지막은 허무했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난 6일 오전 5시 26분께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아파트 욕실에서 벨트로 목을 맨 채로 여자친구에게 발견됐다. 고(故) 조성민씨의 사망 원인은 자살로 판명됐다.


◇ 사망 원인 ‘자살’로 결론…네티즌들 충격
서울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7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부터 ‘조씨가 목을 매 숨진 게 합당하다’는 소견을 받았다”며 “국과수로부터 조씨의 최종 사망시각 등을 확인받은 뒤 내사종결로 사건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유족 측은 ‘시신이 발견된 시각과 사망 시각과의 차이가 크다’며 의혹을 제기했지만 국과수는 부검을 실시한 뒤 사인이 자살이라는 1차 소견을 냈다. 정확한 사망 시각 등의 부검 결과가 나오는 데는 2~3주 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자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네티즌들은 “너무 안타깝다. 아이들이 너무 충격 받을 것 같다”, “최진실, 최진영, 조성민까지…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충격적이라서 말도 안나온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열도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 미디어는 故 조성민의 자살 소식을 속보로 타전했다.
도쿄스포츠는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한국인 투수 조성민이 서울시내의 자택 맨션에서 목을 매달아 사망해 있는 것이 발견됐다고 한국 미디어가 일제히 알렸다”고 보도했다.

닛칸스포츠는 “요미우리에서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활약한 194㎝ 95㎏의 우완 투수 조성민이 목을 매달아 사망했다”면서 “고려대 3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 1994년 한국이 세계야구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거는데 공헌했다”고 전했다.

이밖에 스포니치가 한 때 조성민 자살 소식을 홈페이지 메인에 걸고 지지 통신이 비중있게 다루는 등 각급 미디어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또 일본의 포털사이트 검색란에 조성민의 이름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커뮤니티사이트 게시판에 추모글이 잇따르는 등 일본인들의 관심도 상당했다.

조성민은 야구실력과 함께 빼어난 외모로 일본에서 활약할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름을 따 ‘작은 거인’으로 통하기도 했다.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로 복귀하고 은퇴할 때도 관심을 보이는 등 그에게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반응해왔다.

또 조성민과 고려대 동기 동창인 홍원기(40) 넥센 히어로즈 수비코치는 “지난해 12월 동기들과 송년모임을 했는데 그때는 힘든 표시도 안하고 표정도 밝았다”며 “생각도 못했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조)성민이가 아마추어 때부터 최고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지는 것을 싫어한다. 자존심 하나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결혼 이후 불협화음에 시달렸고 이후 매스컴을 통해 계속 궁지에 몰리다보니 힘들었을 것이다. 또 지난해까지 지도자로 있다가 나왔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故 조성민의 야구인생
故 조성민은 고교(서울신일고)시절부터 야구로 두각을 드러낸 90년대 초반 황금세대의 선두주자였다.
1991년 고교야구에는 지난달 은퇴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포함해 임선동, 손경수, 정민철, 염종석, 손혁, 손민한, 진갑용, 박재홍, 김재현 등 유독 많은 대어급 선수들이 활약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조성민은 이들 중에서도 임선동, 손경수와 함께 ‘빅3’로 꼽히며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우완 정통파 투수인 그는 고3이었던 1991년 신일고를 봉황기와 황금사자기 우승으로 이끌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는 봉황기에서는 우수투수상과 최다홈런상을 받았고 황금사자기에서도 우수투수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인기 또한 좋았다. 조각 같은 용모와 키195㎝ 몸무게 100㎏의 체격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교 졸업 후에는 당시 연고구단이던 LG와 OB(현 두산)의 구애를 뿌리치고 고려대에 입학하며 대학 무대를 휘저었다. 활약상을 지켜본 국내 프로야구 구단은 물론 일본과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를 탐냈다.
조성민은 1995년말 일본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금 1억5000만엔(약 18억원), 연봉1200만엔에 계약을 맺고 일본에 진출했다.

시작은 좋았다. 1996시즌 2군무대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조성민은 1997년 1승2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9의 무난한 성적을 거두며 일본무대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3년차였던 1998년에는 선발로 전환해 전반기에만 7승6패 평균자책점 2.75의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그해 올스타전에서 팔꿈치 부상을 입은 후 다시 부활하지 못하고 2002년 퇴단했다. 일본 통산성적은 11승10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4다.

2000년 그는 톱스타 故 최진실과 결혼했다. 최진실 사이에는 환희ㆍ준희 1남 1녀를 뒀다. 그러나 2년 만에 별거했고 2004년 갈라섰다. 이 과정에서 양육권 문제로 최진실을 폭행, 불구속 입건 되기도 했다. 결혼 후 조성민은 스포츠보다는 사회ㆍ연예면을 장식했다.

조성민은 2005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세 시즌 동안 선수생활을 했지만 3승4패 4홀드 평균자책점 5.09의 성적으로 선수생활을 끝냈다.

2008년 전처 최진실의 자살 이후에는 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에 대한 친권과 최진실의 유산 소유권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최진실의 동생인 탤런트 최진영과도 갈등을 빚었다. 최진영 역시 2010년 자택에서 자살했다.

2011년에는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로 지도자로 나섰다. 그러나 두산은 지난해 11월 재계약을 포기했고 조성민의 야구인생도 마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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