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는 왜 이 사회를 용인하는가?

전성운 / 기사승인 : 2012-12-14 10: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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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잘되면 사회적 격차 줄어들까?

IMF 이후부터 지금까지 경제위기가 이야기될 때마다 따라오는 말은 ‘고통분담’이었다. 그들은 이를 위해 구조조정, 정확히는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고통은 위와 아래가 고루 분담하지도 않았고 그 중 가장 약자들에게 전담되어 왔다. 기업들은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법과 제도를 악용하며 자본을 축적했다.


‘1%대 99%의 사회’, 1997년 IMF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양극화가 이제 갈 때까지 갔다는 것을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의 실체에 대한 이해는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이런 ‘1%대 99%의 사회’는 어떻게 진행되어온 것이고, ‘99%’는 왜 이 터무니없는 격차사회를 용인하고 또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가?


심지어는 마치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면 경제위기도 극복되고 사회적 격차도 줄어든다는 전혀 입증된 바 없는 소설이 여전히 먹혀들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와 야를 포함한 정치권조차 어느 때부턴가 비정규직 해소를 이야기하고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까지 하는 데 과연 그것은 실현될 수 있는, 혹은 실현할 의지가 뒷받침된 약속들일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그간의 진보정당이나 노동자들의 조직들은 왜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한편으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무기력하거나, 심지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까지 하는가?


이 책 <발자국을 포개다-배제된 자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는 이상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 책은 단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누가 답을 찾고 해결의 방안까지를 모색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김선우 시인의 ‘사랑의 혁명에 대하여 말해드리죠’라는 시로부터 시작하는 이 책에서 ‘희망버스’ 사건 이후 구축되고 견고해지는 사회적 연대의 주역들과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 홍세화, 보고문학 작가 이선옥,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 등이 합세해 우리가 가장 앞서 실천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과 서사를 보여준다.


오로지 경력이라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굶으며 싸운 경력밖에 없는 ‘노동자 출신’ 대통령 후보의 등장을 계기로 쓰여진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하나의 해프닝이 아니라, 그의 등장이 어떤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을 갖는지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진실에 관한 문제 제기를 진보적 지식인의 몫이었다고 여겨왔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진보정당의 역할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배제된 자들의 몫을 찾는 일에 진보정당이나 노동조직들이 자기 역할을 못하거나, 나아가 그러한 사회적 배제를 묵인하거나 방조하고 있다면 경우는 달라진다.


더 이상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다. 자본은 이 체제로 노동의 상층부를 포섭하고 노동의 하위계층의 일자리들을 박탈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의 대량해고를 가능하게 하며, 비정규직 노동에 위치한 하위계층은 노동 박탈 상태에 처하거나 해고의 위협이라는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체제의 불합리성과 비인간성에 직접적으로 고통받는 배제당한 자들과 체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변화시키려는 지식인을 포함한 개인과 사회세력사회 사이의 새로운 연대가 구축되어가는 것은 하나의 필연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정치주체들이 등장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발자국을 포개다>, 김소연·이선옥·박노자·홍세화 저, 1만2000원, 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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