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을 주체 못하던 시절 나는 여행 도중 어느 날 한 섬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 항구에 내려 주위를 둘러보던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섬 주민들이 하나같이 ‘애꾸눈’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안대를 차고 있거나 한쪽 눈을 감고 있는 모양새였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그물을 걷고 있는 한 애꾸눈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이곳 분들은 하나같이 외눈이신 듯한데,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노인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제일 짧은 것부터 3가지 이야기가 있소. 어떤 걸 원하쇼?”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제일 짧은 이야기부터 들려주시면 어떨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우리 왕께서 외눈이시라 그렇다오.” 그 말만으로 내 궁금증이 풀릴리 만무하다. 나는 재차 물었다. “그럼 두 번째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그제서야 노인은 그물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쭉 펴더니 옆에 놓인 생선상자 더미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렇게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인 후 노인은 말을 이었다. “우리 역시 본래는 두 눈이 다 있었다네. 하지만 몇해전 외눈박이가 되기로 결정했다네.”
노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오래전 이 나라는 외눈박이 거인이 왕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을 공포로 지배하고 있었다. 이 거인은 힘이 매우 강해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그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했다.
외눈박이 거인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처럼 외눈박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복종하는 ‘자발적 외눈박이 군대’를 이용해 폭력으로 억압하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옥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이 외눈박이 거인이 죽으면서 해결됐다.
“그건 옛날이야기인데 그게 지금 외눈이신 것과는 무슨 관계인가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 인터라 난 말허리를 자르고 되물었다. 노인은 이번에도 담배를 길게 빨더니 눈을 감고 잠시 시간을 들인 후 역시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외눈박이 거인에겐 자식이 있었다네.”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 후 사람들은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왕’대신 자신들의 ‘대표’를 뽑기로 결정했고 그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문제의 외눈박이 거인의 자식이 ‘대표’가 되겠다고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었지만, 어쨌든 시간이 흘렀고 외눈박이 거인을 모르는 세대가 사회 중심을 이루고 있을 때 긴 침묵을 마친 거인의 자식은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섬을 잘 이끌어 나가겠노라고 말하며 자신을 ‘대표’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거인의 자식은 정말 대표가 됐다. 그리고 이 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난 도통 모르겠더란 말이지. 아니 글쎄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눈을 찔러 외눈이 되더니 거인의 자식이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나서더라니까.” 노인은 바닥에 꽁초를 비비며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섬의 모든 사람들은 외눈박이가 됐다네.”
그때 멀리서 어린아이의 것으로 들리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노인에게 비명소리에 대해 물었고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외눈이 된다고 생각하나?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가 되기도 전에 알아서 아이들의 눈을 찌른다네. 저건 그 소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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