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기교, 더하기 감동

정해용 / 기사승인 : 2011-07-22 1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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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중매체에선 서바이벌이 유행이다. 서바이벌(survival)이란 본래 생존이란 뜻이다. 평온한 일상에서 언제나처럼 살아 숨 쉬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대로 두면 죽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위기로부터 용케도 목숨을 건져 살아남았다는 의미의 생존이다. 이를테면 대형 쓰나미가 덮쳐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가운데서 살아남기, 무수한 인명이 살상되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건져 살아남기, 무너진 부실 건축물 잔해 아래서 무사히 버텨 살아남기와 같이 목숨을 건지는 일이 바로 서바이벌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당한 어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당사자에게는 분명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며 그의 사투에 응원을 보내면서도 그 사투가 주는 긴장감 때문에 어느덧 흥미를 느끼며 빠져들게 된다. 이건 일종의 악취미지만, 삶과 죽음을 간접체험하면서 생존본능을 가다듬는 심리적 학습장치로일 수도 있다. 9사1생, 열 명 중 아홉은 죽고 한 명만 살아남을 만큼 생존확률이 작을수록 서바이벌의 의미는 커진다.

실제 사람 목숨이 오가는 서바이벌은 사실 끔찍하다. 그러나 만일 가상의 생존조건을 놓고 긴장감을 기는 것뿐이라면 훌륭한 오락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 혹은 한 팀의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경쟁을 벌이는 스포츠가 바로 그런 오락이다. 이긴 사람은 살아남고 진 사람은 떨어지며, 이런 대결이 몇 차례나 계속된 끝에 마지막 생존자(survivor)가 결정된다. 바로 우승자다.

요즘 TV에서는 서바이벌 형식의 대결구조를 적용한 오락프로그램들이 유행이다. 작게는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해서 한 사람의 우승자를 가리는 프로그램부터, 누구에게나 참가의 기회를 주면서 수차례 경쟁을 통해 단 한 사람으로 생존자를 압축해가는 공개경쟁까지 유형도 다양하다. 연예인들이 참가하여 가상 대결을 펼치는 단순 오락성 예능프로그램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경쟁자에게 상금과 프로 데뷔 등 막대한 보상이 예약된 실전 프로그램도 여럿이다.

케이블방송 엠넷의 ‘슈퍼스타 K’를 필두로, 위대한 탄생, 코리아 갓 탤런트 같은 프로그램들이 케이블과 지상파 방송을 막론하고 유행처럼 생겨났다. 뮤지컬 스타 서바이벌, 밴드 서바이벌, 댄싱 서바이벌, 심지어 요리사 서바이벌, 다이어트 서바이벌, 신입사원 뽑기 서바이벌, 체인 점포를 상으로 열어주는 창업서바이벌도 있다. MBC는 신입 아나운서 선발마저 공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도입해 몇 주에 걸쳐 그 과정을 TV프로그램으로 내보냈다.

사실, 서바이벌이란 본래 말뜻대로라면, 떨어지면 죽고 살아남아야 본전인 게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방송에서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떨어지면 본전이고 살아남으면 적지 않은 보상을 얻도록 되어 있다. 마이너스가 될 위험을 벗어나려고 다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플러스를 얻기 위한 쟁취의 게임이다. 실제로는 서바이벌이 아니라 경연이며 콘테스트 성격이 짙다. 제목 하나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무슨무슨 콘테스트라 하면 너무 식상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이젠 서바이벌이란 개념을 끌어다 쓰는 것 같다. 사실 대다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기존의 ‘경연대회’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서바이벌 = 경연대회’라고 받아들인다 치면, 지금까지 30년 넘게 방송되고 있는 KBS-TV의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만 해도 나무랄 데 없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전국적인 지역예선과 중간 결선, 연말 최종결선 등 몇 단계의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전국에서 노래를 가장 잘 부른 사람을 뽑기 때문이다. 더 오래된 장학퀴즈(40년)도 주마다 장원을 뽑고 다시 우수자들끼리 겨뤄 기말장원, 연말장원을 뽑는다. 서바이벌 형식은 좀더 진화된 콘테스트의 한 형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적 관심사에 눈치 빠르게 편승하기를 좋아하는 정치권에서도 서바이벌 형식에 관심을 두는 모양이다. 한나라당 고위층에서는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뽑는데 서바이벌 형식의 국민판정단 투표 적용을 검토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비판은 있지만 국민들 가운데도 ‘해봐라’하는 의견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실세의 낙점 하나로 후보가 결정되고 그 낙점을 받기 위해 지망자들이 이리저리 줄을 서서 꼭두각시 인형노릇도 마다하지 않는 그동안의 행태에 질린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비례대표만이 아니라 대통령을 그렇게 뽑자고 해도 찬성 의견이 많을 것 같다. 돌아보면 정치권에서는 2001년 대선 때 민주당이 전국 투어를 하면서 벌인 대선후보 선발이야말로 가장 흥미진진한 서바이벌 경연이 아니었을까. 이웃나라 미국에선 이미 전통적인 선발 방식이다. 정당 내부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보는 선거잔치다. 유독 한국 정치에 그 접목이 어려웠던 것은 그런 방식이 한국 정서에 맞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긴장감 높은 서바이벌 방식의 각종 경연 프로그램이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걸 보면, 이제 정치판에 서바이벌 방식의 선거제를 도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대선 후보들을 투표 전 한두 달 꾸준히 TV에 등장시켜 요모조모 분야별 경쟁과 토론을 시키며 검증해보는 것은 어떨까.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 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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