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각종 소설과 영화 속에 등장한 로빈훗의 이야기는 역사 속 진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스크린에서 로빈훗을 연기했던 숀 코너리와 케빈 코스트너, 러셀 크로우는 가공의 사건에 맞춰 자신만의 로빈훗을 창조했다고 봐야한다. 뮤지컬 ‘로빈훗’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의적 로빈훗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영국의 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가 시절의 시대적 배경은 성군의 역사를 찾기 힘든 시기였다.
나약한 악역으로 등장한 존왕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도 패하고 과세문제로 시민은 물론 귀족의 저항에도 부딪혀 훗날 영국 의회주의의 기본이 된 대헌장에 서명을 하기도 했으며, ‘사자왕 리처드’로 전승되는 리처드 1세 역시도 정치면에서는 폭압적인 과세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왕이었다. 십자군 전쟁의 영웅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실정은 폭군에 가깝다.
실존했던 로빈훗이 셔우드 숲에서 세금 마차를 덮치던 도둑이었다면 그것은 리처드 왕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한 채 정의를 바로잡고자 했다기보다 이미 리처드 왕이 다스리던 시절부터 내제되었던 사회에 대한 분노가 적의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사보다 전승에 가까운 로빈훗의 이야기가 매력을 갖는 이유는 사실이 아닌 12~3세기의 전설이 여전히 현대사회에도 같은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같은 고민과 싸우고 있다
뮤지컬 ‘로빈훗’에서 주인공 로빈 록슬리는 모든 것을 잃은 남자다.
가장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주군을 잃었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반당했으며, 가족은 모두 몰살을 당했다. 심지어 자신은 반역과 살인의 누명을 썼다. 왕의 근위대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로빈 록슬리가 셔우드 숲의 도적들과 함께 세상에 대한 복수를 위해 정의를 바로잡고자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과정에서 로빈훗과 도적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잃은 자들의 동질감과 혁명에 대한 의지였다.
이들에게 혁명의 당위성은 바르지 못한 세상이었고, 수탈과 불합리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이들이 말하는 것은 ‘사람답게 살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정치를 잘 하는 사람이 정치를 하고 정직한 사람이 권력을 가져야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나올법한 대사가 핵심에 서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당연하고 기본적인 이 명제에 대해 타는 목마름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하루종일 일해도 배부르지 않은 고통에 대한 푸념은 13세기에 세금을 내지 못해 숲으로 도망을 쳐야했던 도적들이나 21세기에 조삼모사같은 연말정산과 서민과세에 분노하고 있는 서민들이나 비슷한 동질감을 형성해준다.
성 안에서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혹은 듣지 않으려 하는 왕족과 귀족의 안타까운 괴리감은 지금도 정치권을 바라보며 분노하는 일반의 목소리가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로빈훗은 13세기에 그릇된 왕을 향해 바른 왕세자를 세운다는 대의 속에 자유를 내걸고 희망을 노래했지만, ‘잘 살고 싶다’ 혹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의 의지를 토로하는 현대 사회와도 연결되어 있다.

악의 중심에 배신의 주역인 길버트가 존재한다. 존왕과 마리안 역시 악역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길버트는 이들의 숙주와도 같은 역할이다.
이들이 작품에서 악역의 옷을 입게된 것은 모두 욕심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제한된 시야에서 제한된 것만 보며 자라온 존은 형인 리처드를 벗어나 왕좌에 오를 기회만을 오랫동안 기다렸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마리안은 사랑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던 소녀의 시절을 지나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는 신분과 지위, 그리고 재산으로 여자의 삶을 정의했다.
길버트는 신분 상승의 욕심으로 이들과 각각 결탁했고, 결론적으로 친구였던 로빈 록슬리의 인생을 망쳐버렸다.
작은 욕심에서 시작해 점점 커지는 욕심과 책임져야 할 죄책감을 매일 혼자서 베어야 하는 고통과 싸우듯 길버트의 그릇된 선택은 로빈 한명에서 그치지 않고 영국 시민의 삶을 더욱 척박하게 만드는 것으로 확대됐다.
존과 마리안 또한 자신의 선택에 끝없이 괴로워했지만 욕심을 이루기 위해 괴로움은 감내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뮤지컬 로빈훗에서는 로빈 록슬리 만큼 필립 왕세자가 부각된다.
프랑스에서 성장한 철없는 왕세자 필립은 셔우드 숲에서 자신을 죽이려던 존과 길버트의 계획을 알고 로빈 일행에 합류하게 되고 서민의 삶을 함께 겪으며 눈높이에서 성장한다. ‘왕세자 필립의 성장기’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어쩌면 정치와 행정은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에서 함께 부딪기는 것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교훈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혁명이라는 결과에서 과연 얻어지는 결론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웃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한다면 그 대답도 명쾌하지 못하다.
후세를 위한 용단이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혁명의 최전선에 나선 이들과 수권의 앞 선에서 맞선 이들은 대부분 상실과 조우한 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루어 온 이 모든 문명과 역사도 결국은 그러한 희생의 반복 속에 지켜질 수 있었다.
신도림 디큐브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로빈훗’은 유준상‧이건명‧엄기준이‧박성환‧규현‧서지영‧김아선‧조순창‧박진우‧김여진‧다나‧서영주‧홍경수 등이 열연하고 있으며 양요섭은 이미 모든 스케줄을 마친 상태다. 공연은 오는 29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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