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을 통해 대한민국의 ‘왕’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단 3명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500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은 5000만 명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 할 수 있다. 참으로 대단한 민주주의다. 단 한명이, 그것도 단순한 ‘인기투표’로 결정된 한사람이 5000만 명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질 수 있다니.
이 시점에서 우리는 3가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투표를 통해 선출된 한명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을 ‘대표’ 하고 있는가? 둘째, 투표는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인가? 셋째, 민주주의는 옳은가?
일단, 첫 번째 질문부터 답해보자. 대답은? 아니다. 우리의 이명박 대통령께선 지난 2008년 임기 1년차에 일찌감치 한 자릿수 지지율을 찍으셨다. 바꿔 생각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지라는 것이 생각의 일치, 혹은 유사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지율은 ‘민의’에 대한 바로미터다.
두 번째 역시 마찬가지로,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독일의 히틀러는 국민투표를 통해 권력을 얻었고, 2차 세계대전이라는 크나큰 ‘월드 이벤트’를 개최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투표는 ‘최고 권력자’를 뽑는 방식으로 선호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들은 반쪽짜리 대표자에 불과하다.
오히려 미국에게 ‘독재국가’로 찍힌 나라들, 혹은 러시아와 같은 나라들이 오히려 높은 투표율과 그에 못지않은 높은 지지율로 대표자를 선출한다. 이 얼마나 민주적인가. 투표가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라면, 이들은 훌륭한 민주국가다.
그럼 세 번째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백번 양보해서, 투표가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도구라고 치자.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옳은가? 이 또한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명칭 자체는 민중이 주인이 되는 체제라는 의미를 가질 뿐 가치중립적이다. 민주주의 또한 좋은 민주주의와 나쁜 민주주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무식함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설파했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후대에 석가, 공자, 예수와 더불어 4대 성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슬람의 무함마드는 까마득한 후배니 일단 열외로 하자.)
그런 소크라테스는 누가 죽였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기원전 399년 아테네 시민들에게 고소당해 사형됐다.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였던 당시 20대의 플라톤은 ‘민주주의’덕분에 스승이 사형당하는 사건을 계기로 ‘철인정치’의 사상을 세운다.
다시, 투표 이야기로 돌아와, 앞서 언급했듯이 투표는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보다는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거나 유지시키기 위한 도구로 훨씬 자주,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됐고 더욱 적합한 모습을 띄며 작동했다.
대표적인 예가 ‘콘클라베’다. ‘걸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하는 이것은 신을 대리하는 ‘교황’을 선출하는 투표제도로, 아이러니하지만 인간들끼리 모여 뽑는다. 이 시스템은 가톨릭교회의 역사에서 몇 세기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외부의 간섭을 미리 일체 방지하여 비밀을 보관, 유지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교황 보다는 교왕에 가까운, 신의 대리인보다는 종교 권력자였던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이 제도를 아주 적절하게 활용해 그 자리에 올랐다. 막대한 뇌물로 교황자리를 샀다는 뜻이다. 이후 그는 역사가 ‘사상 최악의 교황’이라는 평가를 내릴 만큼 ‘막장’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를 ‘뛰어난 지도력을 갖춘 군주’라 기록하기도 했다.
이것의 현대판 버전이 바로 ‘이사회’다. 기업의 지분을 많이 가진 소수의 ‘대주주’들이 모여 구성하는 이사회는, 일반적으로 가장 지분이 많은 이가 ‘대표’가 되고, 의사 결정 또한 지분보유량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합종·연횡의 온갖 암투가 일어난다. 그런 이들도 어떤 의제를 의결할 때 ‘투표’를 이용한다.
그리고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북한도 ‘선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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