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미국이나 ‘안보논리’는 이제 녹슨 칼

정해용 / 기사승인 : 2012-10-12 13:26:27
  • -
  • +
  • 인쇄
<정해용의 관전상황실>

18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도 대통령 선거 시즌입니다.


미국 얘기를 먼저 해보지요. 대통령 선거의 꽃이라 불리는 TV 공개 토론이 지난 3일 열렸습니다. 여기서는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가 우세승을 거뒀다는 소식입니다. ‘대화와 화해’ ‘희망과 변화’를 역설하는 현직 대통령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비판하며 ‘강한 미국의 부활’을 강조한 결과 미국인의 자존심에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었던가 봅니다. 이후 롬니는 계속해서 미국인의 자존심에 호소하는 감성적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10일 아이오와 연설에서도 롬니는 다시 ‘강한 미국’을 주장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내가 몇 해 전 고향에 있는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굉장한 이웃 청년을 하나 만났는데 그가 바로 도허티였습니다. 그는 중동에서 복무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도허티는 지난달 리비아에서 발생한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피습사건 때 숨진 네이비실 대원입니다. 우연치 않은 인연을 언급하면서 롬니는 미국 공관이 피해를 입은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안보불감증과 무능 때문이라고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곧 롬니에게 강한 역풍을 몰고 왔습니다. 도허티의 유족인 어머니가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겁니다. “그는 오바마를 깎아내리기 위해 내 아들의 죽음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나는 그를 믿지 않는다.”


도허티의 친구도 출연했습니다. “도허티가 롬니를 만난 건 사실인데, 매우 웃긴(Comical) 사건이라고 말하더군요. 도허티는 네 번이나 롬니와 마주쳤는데 그 때마다 악수를 청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매번 똑같은 말로 자기소개를 하더래요. 도허티는 롬니가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기선전이나 하는 진부하고 진실성이 없는 정치인 같다고 말했어요.”


망신을 당한 롬니 후보의 캠프에서는 이에 대해 성명을 내고 다시는 유세 도중 도허티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에서도 ‘안보’라는 주제는 선거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이슈인 듯합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강한 힘을 유지하겠다는 것을 약속해야 하고, 그럴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한 진전된 정책의 구상과 함께 빈틈없는 안보를 유지할 정책이 있다면 국민이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문제는 국리민복에 대한 구상은 허약하면서 안보만 강조하는 경우입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할 대책이 허약할 때 국민에게 국가 안보의 위태로움을 강조하여 지지를 호소하는 강경론자들의 전략을 ‘안보논리’라 부릅니다. 이번 사건은 공화당 캠프의 ‘안보논리’가 유권자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선거전이 한창인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북한 관련 뉴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북한은 동족인 동시에 직접 군사적 대립관계를 가진 상대이므로, 곧 ‘안보’ 관련 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새누리당 관계자의 발언이거나 보수 언론이 기획해서 내보내는 뉴스들이죠.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동향을 예의주시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례적인 외교안보장관회의 발언이 새삼 주요 뉴스로 보도되어 안보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가운데,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 당시 발언이라는 ‘국가기밀급’ 내용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의 폭로 형식으로 매스컴에 보도되어 남북관계에 대한 논란의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한 보수언론이 ‘한국 사람이면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라며 뜬금없이 보도한 80년 버마 아웅산 사건 때의 사진 같은 것은 거의 애교스러운 북한 관련 뉴스입니다.


새누리당이 ‘안보논리’라는 녹슨 칼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이번 대선에서 승리가 어렵다는 위기의식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 당과 정치의 개혁을 강조하면서 당내 구주류 인사들을 선대위에서 배제했던 박근혜 후보는 ‘국민 대통합’이란 명목으로 이들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애간장이 탄다는 얘기겠지요. 실제 여론조사에 나타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3인의 경합은 갈수록 팽팽하여 누구도 앞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안보논리는 대체로 보수정당에 유리한 논리로 여겨집니다. 선거 때 안보문제를 먼저 꺼내고 확대재생산하는 건 보수정당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청와대와 여당으로서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일련의 북한 관련 뉴스 끝에 맞닥뜨린 클라이맥스의 뉴스는 뜻밖에도 북한군 병사 귀순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북측 휴전선 경계병이었던 이 북한 군인은 북측 경계지역을 사흘 걸려 통과한 뒤 남측 경계지역을 단 몇 시간 지나왔습니다. 이어서 높이 4미터나 되는 철책을 자력으로 넘어올 때가지 그는 남측 경계병을 한 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발로 남측 경계초소에 찾아가, 그것도 두 개째 초소의 문을 두드린 뒤에야 문을 열고 나온 초병에게 귀순 의사를 밝혔다나요.


북한군이 넘어와 문을 두드려야 내다보는, 이런 경계가 과연 정부가 강조하는 ‘철통같은 경계’냐고 여론이 난리입니다. 불과 몇주 전 대통령이 대선 관련 경계 강화를 지시했다는 안보장관회의는 그저 대내 전시성 회의였나 봅니다. 보수 여당이나 보수언론이 여느 선거 때처럼 ‘안보논리’를 써먹기는 이제 글렀습니다. 위기의식에 빠진 보수 여당이 어디서 돌파구를 찾을지 궁금합니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