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눈을 감기 직전에 그의 귀에 대고 말했어요. 내가 민주주의도 회복하고 민족통일도 앞당기고 그거 다 이루고 따라갈 테니 먼저 거기 가서 기다리라고요. 살면서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행복했었다고요. 남편이 알아듣고 웃었어요.”
고(故)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바깥사람(감옥 안의 김 고문을 바깥에서 돌본다는 이유로 붙은 별칭)’, ‘김근태가 남긴 비밀병기’ 등의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김 고문의 든든한 정치적 동지였던 인재근(민주통합당ㆍ서울 도봉갑) 의원. 지난해 김 고문이 세상을 떠난 후 정치권에 입문한 그는 “남편의 정신과 뜻을 이어받아 두 사람 몫의 인생을 살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 김근태의 ‘남편’이자 가장 든든한 ‘동지’로
대학 시절부터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인재근 의원은 학과 선배인 최영희 민주통합당 전 의원의 소개로 김근태 고문을 만났다.
“첫 느낌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수배중이어서 그런지 많이 우울해보였거든요. 그런데 어려운 시절에 만나 같은 길을 걷다보니 측은지심, 동지의식 같은 것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결혼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아마 지금 같은 시절에 만났다면 별 감흥이 없었겠죠. 그 시대가 저희 둘을 이어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휴대전화는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 한번 약속을 하면 만날 때까지 몇 시간씩 기다리기가 일쑤였다. 인 의원은 “함께 종로에 있는 클래식 음악다방에 자주 가곤 했었다”며 “두 사람 다 수배중일 때가 많아 숨어 다니면서 산에도 가고 강에도 갔었다”고 그 시절을 기억했다.

인 의원은 김근태 고문이 설립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서 함께 활동했다. 그러다가 1985년 김 고문이 ‘서울대 깃발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연행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3일 동안 가혹한 전기고문·물고문 등을 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인 의원은 고문 사실을 미국 언론과 인권단체에 폭로해 전 세계에 알렸고, 이를 계기로 1987년 부부가 공동으로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했다. 그 후 인 의원은 양심수 후원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의 창립 멤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서울지역 의장 등을 지내며 민주화운동의 길을 계속 걸어왔다.
특히 1985년 12월 양심수 후원단체인 민가협을 창립한 일은 인 의원의 민주화투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남편이 고문당한 것을 폭로하고 기독교회관 인권위에서 장기농성을 하는 과정에서 구속 학생이나 노동자들의 가족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학생가족, 노동자가족, 전태일유가족, 장기수가족협의회 등이 각각 소규모 단체로 있었지요. 이것을 하나의 협의체로 묶어야겠다고 판단해 민가협을 만든 겁니다. 그 어머니들이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이 됐죠.”
◇ ‘김근태가 만들던 세상’ 이어나갈 것
인재근 의원은 김근태 고문을 “수줍음 많고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시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눈앞에 당장 고난이 보여도 주저 없이 깃발을 들고 앞장서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내인 인 의원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남편이었다. “남편이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둘이서 함께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많이 다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행복한 때였을 거에요”
보통의 여자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모진 삶을 인 의원은 의연하게 견뎌왔다. 정치적 신념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1990년대 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을 지내기도 한 인 의원의 주변엔 늘 사람이 꼬였다. ‘남다른 친화력과 대장리더십’. 인씨를 접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내리는 평가다.
그래서인지 그는 30대부터 정치권에서 여러 차례 구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매번 이를 사양했다. 그는 “남편은 마음이 몹시 곱고 착한 사람이어서 내가 정치를 하면 나를 도와준다고 자기 일을 못했을 것”이라며 “실제로 남편은 내가 자신의 능력을 정치적으로 만개시키지 못하는 것을 늘 아까워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의 지역구(서울 도봉갑)를 물려받았다.

“남편이 만들던 세상을 제가 이어 만들어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돼, 현실 정치 참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남편이 추구했던 민주주의 정신을 제가 잘 지켜서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면 ‘인재근, 당신 참 잘했어!’라는 칭찬을 듣고 싶습니다.”
지난 6월 26일 인재근 의원은 고문과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모임인 ‘진실의 힘’에서 수여하는 제2회 인권상을 김근태 고문 대신 수상했다. 그 자리에서 인 의원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남편이 떠나기 전에 은폐된 고문의 진실을 밝히고 고문의 국가적 사회적 치유에 좀 더 일찍 헌신했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쉬쉬했던 점이 가장 후회스러워요. 병을 감추니 병의 원흉인 고문 후유증도 같이 감춰지게 되고, 결국 고문을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말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상 상금을 고문치유센터 설립기금으로 전액 기부한 그는 “김근태의 이름을 걸고 진실의 힘과 함께 고문이 없는 나라, 고문의 상처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겠다”며 “우선 19대 국회에서 ‘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보상 및 치유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 의원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바깥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바쁘고 해야 할 중요한 일도 무척 많은 것 같다”며 “여성,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열심히 뛰고 싶다”고 국회 입성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김근태의 뜻, 청렴함, 근면함을 이어가겠다. 스스로 맑은 물이 되어 현재의 흙탕물과 같은 정치판을 바꾸겠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들이 제도권 정치에 진출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싸우는 여자지만 동시에 가장 푸근하고 후덕하다”는 평을 듣는 인재근 의원. 밝은 웃음으로 가시밭길 인생을 헤쳐 온 그가 어떤 정치를 이루어낼지 몹시 기다려진다.
◇ 인재근 의원은…
1953년 인천광역시 강화 출생,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창립을 주도해 총무를 맡고, 이화여대 민주동우회 회장ㆍ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입집행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 제19대 국회의원 외에도 △한반도재단 이사장 △사랑의 연탄 나눔운동 이사장 △사랑의 친구들 운영위원장 △도봉 희망봉사단 단장 등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