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死刑, 去勢, 그리고 오부리

유상석 / 기사승인 : 2012-09-13 15: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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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리’라는 단어는 음악 용어인 ‘오블리가토(obbligato)’에서 유래했다. 원래 ‘오블리가토’는 ‘악보에 표시된 부분 중, 연주자가 임의로 생략하거나 변형하면 안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던 것이 정확한 시기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턴가 ‘주선율을 해치지 않으면서 임의로 변형해서 연주한다’는 의미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오블리가토’를 짧게 줄이고, 발음도 일본식으로 바뀐 단어 ‘오부리’는 지금은 ‘노래에 맞춰 즉석에서 반주를 연주하는 행위’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이런 오부리는 주로 주점 등에서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술에 취해 노래하는 손님들은 나름 흥에 겨워 신나게 노래하지만, 이들에게서 정확한 음정ㆍ박자 등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도 순발력을 발휘해 손님의 노래에 최대한 반주를 맞춰주는 것이 훌륭한 오부리의 조건이라고 한다.


적지 않은 음악인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오부리에 많이 뛰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장의 생계를 위해 오부리를 시작하는 것을 염려하고 꺼리는 음악인도 많다. 순발력과 멜로디 감각은 키울 수 있으나, 음정ㆍ박자가 부족한 노래에 맞춰가며 반주하다 보니, 장기적으로는 음악인으로서의 감각을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 살인 행위, 아동에 대한 성폭행 등 흉악범죄가 잇따르면서 정치권에서는 사형(死刑) 및 물리적 거세(去勢)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사형제 존치’를 내세우자,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가 “인혁당 사건을 잊었느냐”며 거세게 반대하고 나섰다. 또 박인숙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성범죄자에게 물리적 거세를 추진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민주통합당 여성 의원들이 ‘인기영합적 선정주의’라며 반대하는 모양새다.


사형제 존폐와 성범죄자 물리적 거세 논의는 예전부터 있어왔던 논란이고, 개인마다 견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오래된 논쟁거리에 대해 정치인이 어떤 주장을 펼쳐도 그에 대한 반대의견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자가 한 가지 염려하는 것은, 이들 찬반 논의가 당리(黨利) 논쟁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으로서 개인의 정치관이나 신념과는 관계없이, 또는 자신을 뽑아 준 국민들이 바라는 바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우리 당의 누군가가 찬성했기 때문에’ 찬성하고, ‘상대 당의 누군가가 주장했기 때문에’ 반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두 논의가 오래된 논쟁임에도 아직도 논란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국민 개인의 안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형 존치론자와 폐지론자는 사형수와 피해자로, 거세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는 성범죄자와 (잠재적)피해자로, 그 대상은 다를지언정, 결국 국민의 안녕을 위해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이 논쟁이 정치 논리에 휩쓸려서는 안되는 이유다.


분명한 건, ‘오부리’는 요즘 자동 반주기에 밀려 사라지는 추세라는 점이다. 자신의 주관ㆍ국민 여론과는 상관없이, 소속 정당의 이익에 따라 ‘오부리’만 계속하는 정치인은 순발력을 발휘해 당장의 정치적 입지는 지키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민심을 듣는 습관을 잊어버린 채, 국민에게서 외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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