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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역대 대통령은 물론 현직대통령에 대해서도 존경하는 분위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이승만 대통령 집권초반(1,2대)에는 어느정도 있었지만 사사오입 개헌으로 존경심은 퇴색됐다. 그가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후에는 아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사오입개헌으로 3대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고 은퇴하였다면 아마 대한민국의 국부로 추앙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3.15부정선거도 없었고, 4.19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빨리 민주주의가 정착되었을 것이다.
사사오입 개헌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때부터 민심은 떠나기 시작했다. 개헌으로 이 박사가 한번만 더 대통령을 하고 용퇴를 하였어도 국민들은 이해를 하였을 것이다. 60년에 또다시 이승만 대통령을앞세워 3.15 부정선거로 이기붕이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우리 백성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불의를 보고 참지를 못한다. 4.19 혁명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연로한 이승만 대통령이 말년에 이기붕과 자유당에 이용당하여 불명예스럽게 하야한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박사가 1960년 3월15일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을 때 연세가 86세다. 사실 이승만 박사니까 86세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평균수명이 20년 정도는 늘어난 오늘날에도,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86세에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승만 박사의 해박한 국제적 감각, 독립운동과정에서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과 건국과정에서의 독보적인 활동 그리고 미국에 대한 영향력이 74세에 초대 대통령이 되어 12년간 대통령을 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3선을 한 사람은 루즈벨트 대통령밖에 없다. 미국도 그 후에 8년 이상 대통령을 할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분이다. 민주주의 사상이 철저히 몸에 박힌 사람이다.
그런 그가 왜 사사오입개헌을 해가며 장기집권을 하였을까? 그의 애국심과 국민이 원하면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국민존중 사상에 연로하여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우의마의 시위, 대한노총의 대통령 출마권유 총파업시위 등 관제데모를 이박사는 국민들이 진실로 자기를 원하는 것으로 오판을 한 것이다. 여기에 '나 아니면 안된다'는 엘리트의식까지 겹쳐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박사는 후계자로 장면과 조병옥박사를 생각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도덕성과 능력, 미국에 대한 독립적인 자세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들에게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는 나라를 맡기느니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자기가 좀 더 집권하면서 나라를 보위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낫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박사의 오판으로 우리 국민들은 민주체제 확립을 위해 기나긴 세월을 홍역을 앓았다. 지난 4월19일 이박사의 양아들 이인수박사가 4.19묘지를 참배하여 사죄를 시도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제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국민대통합의 길로 나가야 한다.
누구나 공과(功過)는 있기 마련이다.
이승만 박사는 1875년에 태어나 조선과 대한제국의 계몽 운동가였으며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다. 주로 미국에서 외교활동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 근세사에 보기 드문 선구자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당시 총장이 바로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한 윌슨 대통령이다.
이박사는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최대한 활용,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외교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그 당시 이승만 박사가 독보적이었다. 이박사는 신념이 확고하고, 미래예측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공산주의는 필패한다. 결국은 자본주의가 이긴다. 일본이 미국을 등에 업고 상품을 앞세워 다시 올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역설한 사람이다. 태평양의 해양국가 세력의 선봉역할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해야 한다고도 주창한 사람이다.
이박사는 우리 민족을 위해서는 실리를 우선시 하였다. 개화기에는 한국과 중국도 일본을 모델삼아 자본주의적 근대성을 깨우쳐 동양3국이 함께 새로운 동아시아의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시절에는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건의,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임시의정원에 의해 탄핵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때는 국군의 작전권을 미국에 넘겨주었다. 아직도 휴전상태라 국군의 작전권은 미국에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국방비를 절감함으로써 국방비가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하였다.
자존심보다는 국민의 안위와 실리적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눈앞의 인기보다는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실리적인 지도자였다. 대마도 소유권 주장, 반공포로 석방과 북진통일을 서슴없이 주장하는 등 배포도 큰 사람이다. 이박사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여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6.25전쟁에서 공산당으로부터 한국을 지켜낸 대통령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사라지고 조선인민공화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한 근저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공이 지대하다. 이박사가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민주주의의 전통을 확립하지는 못했으나 애국심이 강하고 국민이 원하면 자살이라도 하고, 대통령도 그만 두겠다는 국민존중의식이 투철한 사람이다.
이제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긍정적인 역사는 물론 부정적인 역사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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