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인이 직접 뽑은 LA 최고의 관광지
LA에는 테마파크의 ‘원조’ 디즈니랜드(Disneyland)와 유니버설스튜디오(Universal Studios)를 비롯해, 세계 영화의 중심 할리우드(Hollywood)와 대표적인 해변 산타모니카(Santa Monica)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고급 주택가인 비버리힐즈(Beverly Hills)의 윌셔대로(Wilshire Boulevard)를 따라 위치한 로데오 거리에서는 아직도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1990)의 비비안(쥴리아 로버츠)을 추억하는 관광객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코리언 몬스터’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LA다저스)선수의 활약 속에 다저스타디움(Dodger Stadium)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최대규모의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미국인들이 직접 추천한 LA의 최고 관광지는 단연 게티 센터(The Getty Center)다.

미국의 석유재벌 장 폴 게티(Jean Paul Getty, 1892. 12. 15 ~ 1976. 6. 6)가 세워 사회에 환원한 게티 센터는 J.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등이 위치하고 있는 건물로 LA의 부촌을 지나 산타모니카 해변과 UCLA 캠퍼스가 내려다보이는 산타모니카 산의 브렌우드(Brenwood)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청명한 LA의 기후로 인해 LA의 다운타운은 물론 태평양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미술관의 작품 감상은 물론 주변 환경을 즐기는 데도 부족함이 없다.
1976년 사망한 게티는 7억 달러를 재단에 기부하며 세계적인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에게 의뢰하여 12년의 기간을 거쳐 미술관을 비롯한 게티 센터를 세웠다.
미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마이어는 이 건물의 건립 계획을 세우는 데만 5년을 고민했고, 게티가 사망하고 13년이 지난 1989년에야 공사를 시작해, 1997년 12월에 개관했다. 건축물을 백색으로 짓는 일관성을 유지한 마이어의 주관이 투영된 게티 센터는 흰색을 바탕으로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 LA시민들의 쉼터로 자리를 잡았다.

예술을 담은 건축물도 그 자체로 예술품
미술관 역시 친환경의 요소를 가득 담아내고 있다. 전시실에 인공적인 조명을 활용하지 않고, 자연광의 유입으로 전시된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 게티 미술관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미술관 상층부에는 200-300lux 이하를 유지해야 하는 유화작품들을 주로 전시하고, 빛의 유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하층부에는 조각품들과 최대 50lux 이하를 유지해야 하는 장식미술품과 필사본, 드로잉, 그리고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미술품들은 대부분 게티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이다. 3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를 하고 미술품 수집을 위해 세계를 돌아다닌 게티에 의해 수집된 미술품들은 이 곳에 고스란히 모여 있다.
게티 선터는 계절 꽃들과 인공으로 조성된 개울 등으로 구성된 중앙정원과 야외 플라자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오히려 천혜의 자연경관을 누리기에는 미술관보다 더 적격인 중앙정원은 연령대를 초월하여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야외 플라자에 위치한 커피숍과 레스토랑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티 센터를 세운 장 폴 게티는 1892년, 미국 미네소타의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후, 아버지 조지 게티의 도움으로 유전을 사들이고 석유사업에 뛰어들었다. 1916년, 23세의 나이에 백만장자가 된 폴 게티는 아버지와 공동으로 게티 오일사를 세우고, 이후 중동 진출 성공 등을 이어가며, 특수항공기제작, 부동산 사업 등에도 진출했다.
‘21세기의 성공요소’를 별도로 설파할 만큼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떨친 폴 게티는 그러나 어마어마한 구두쇠로도 유명했다. 직원들이 전화를 쓰지 못하도록 자물쇠를 잠그고, 자신의 저택에는 손님이 사용할 수 있도록 유료공중전화를 권하기도 했던 폴 게티는 한때 미국 최고의 부호였으며, 1966년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로 기네스북에 오르게도 했다.
지독한 구두쇠였던 폴 게티는 그러나 말년에 게티 센터를 짓는 데에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투자했다. 그가 경영했던 게티 오일사는 그의 사망한 후인 1988년, 텍사코사에 합병되었다. 세계 최대의 사진 전문 통신사인 게티이미지의 창업자 마크 게티(Mark Getty)는 폴 게티의 손자다.
게티 센터는 개관 이후 지금까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다만 2000년대 이후 주차비를 받고 있는데 15$였던 주차비는 최근 18$까지 인상됐으며,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 함정이다.

| 장 폴 게티는 얼마나 악명 높은 구두쇠였나? 1973년, 폴 게티의 손자가 ‘게티 3세’가 로마에서 유괴됐다. 유괴범들은 ‘게티 3세’의 몸값으로 1700만$를 요구했지만 게티 가문은 이를 거절했다. 당시 월급 100$를 수령하던 폴 게티의 아들은 손자를 살려달라며 폴 게티에게 유괴범들의 요구에 응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유괴범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 경우, 다른 13명의 아들과 손자들도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 폴 게티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괴범들이 ‘게티 3세’의 귀를 잘라 언론에 공개하자 결국 직접 협상에 나섰고, 합의를 통해 손자를 구해왔다. 폴 게티는 처음 1700만$를 요구했던 유괴범들에게 최종적으로 220만$를 지불했다. 이는 당시 세금공제가 220만$까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폴 게티는 이 220만$ 마저도 직접 지불한 것이 아니라 ‘게티 3세’의 아버지인 자신의 아들에게 연리 5%의 조건으로 빌려준 것이었다. |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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