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정치의 계절, 심판의 계절

정해용 / 기사승인 : 2012-03-05 13: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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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또 총선이 다가왔다. 물론 정치가 잘못됐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지난 4~5년은 지나치게 긴 세월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선거가 눈앞에 닥쳤다는 사실을 의식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지난 4년이 얼마나 순식간인가 소름끼칠 따름이다. 순간처럼 빠른 시간이지만,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 4년은 한 사람의 처지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혹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옮겨놓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그 시간 안에서 벌어지고 또 잊혀져갔는가.
개인의 처지만 그러한가. 당장 지난 선거 때 영원무궁 의리와 단결을 유지할 것처럼 파이팅을 외치던 정당들이 자기반성을 외치는 것만으로 모자라 이름을 바꾸고 재창당, 새 출발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그것만이면 약과다. 의리와 충성을 다짐하던 각 정파 안에서도 이합집산과 헤쳐모여가 한참이다. 어제의 라이벌이 손을 잡고 어제의 동지들이 등을 돌려 제 갈 길로 흩어진다. 뭔가. 이 마카로니 웨스턴 같은 배반과 의리의 한 장면들. 정치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했지만, 근래 정치판의 줄 바꿔서기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과연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과 개인이나 계파의 실리를 챙기려는 이기적 동기 사이에 괴리는 없는 것일까. 선량의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고르는 사람과 그 심사를 받는 사람들의 위치는 과연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일까.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에 기해라는 재상이 있었다. 경륜도 뛰어났거니와 공평무사한 인품으로 명망을 얻은 사람이다. 그가 노쇠하여 물러나기를 청하자 군주 도공은 기해에게 후임으로 누가 좋겠는지를 물었다. 기해는 망설임 없이 해호라는 사람을 천거했다. “아니, 해호라면 그대의 숙적이 아닌가. 어떻게 그를 추천하는가.” 도공이 놀라서 물었다. 그러자 기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공께서는 저의 원수가 누구냐 물으신 게 아니라 후임으로 적합한 사람을 물으신 것 아니옵니까. 저는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왕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도위에는 누굴 뽑으면 좋겠소.” 기해가 또 말했다. “오를 쓰시면 될 것입니다.” 왕이 또 놀랐다. “오라면 기오를 말하는가. 기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 이번에도 기해는 담담히 대꾸했다. “공께서는 저의 자식이 누군가 물으신 게 아니라 도위에 적합한 인물을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왕이 탄복했다. “자기 라이벌이라 해서 헐뜯지 않고 자식이라 해서 차별하지 않으니 기해야말로 공정한 사람이다.”
미국 남북전쟁 때 남군에 로버트 리라는 지휘관이 있었다. 남군의 임시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는 또 다른 지휘관 와이팅과 리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있었으므로 리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귀관은 와이팅 장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러자 리가 대답하기를 “우리 남군 전체에서도 보기 드문 유능한 지휘관입니다.” 의외의 대답에 데이비스는 놀라움을 나타냈다. “와이팅은 리 장군에 대해 혹평을 하고 다닌다던데.” 리는 담담히 대꾸했다. “각하께서는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을 물으셨지, 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친구관계의 모범으로 자주 오르내리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도 그러하다. 요즘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신상털기’ 스타일로 평하자면, 관중은 탐욕스럽고 헛발질도 많은 사람이었다. 젊어서 포숙과 동업으로 장사를 할 때는 이익의 많은 부분을 자기 몫으로 빼돌려 포숙을 속였고, 일을 맡기자 오히려 벗을 곤란하게 만들었으며, 벼슬에 나가서는 무능하게도 세 번이나 그 자리에서 해직되었다. 전쟁에 나가서는 세 번이나 도망쳤고, 포숙과 서로 다른 왕자를 섬겨 왕권 다툼에서 패하였다. 패배한 왕자 규의 척신들이 모두 죽음을 당할 때 관중은 포숙을 통해 투항하는 굴욕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포숙은 친구 관중의 역량을 명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의 실패를 매번 이해하고 양해하고 용서했을 뿐 아니라, 마지막에는 자신의 군주 환공에게 그를 중용하도록 설득하여 관중에게 화려한 입신양명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제나라가 중원의 맹주로 성장한 것이 바로 환공 재위 때였다. 관중이 아니면 제나라의 부국강병도 어려웠을 것이지만, 포숙이 아니었으면 명재상 관중도 없었을 것이다.
공평무사하면 왕도가 탕탕하리라고 고서는 말한다. 여와 야에서 각각 인재를 천거하여 국민 앞에 선량 후보로 내세우는 일(공천)이 이처럼 공평무사하게 이루어진 뒤에야 나라의 장래 또한 탕탕하게 펼쳐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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