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몇 년 사이, 우리가 보아온 것은 혼돈이다. 난데없이 야채 가격이 폭등하여 배추 한 포기가 1만원이네 2만원이네 하더니 몇 달 뒤에는 배추가 남아돌아 생산농가에선 생으로 갈아엎느니 어쩌니 난리가 났다. 돼지고기 값이 쇠고기 값을 넘어서게 된 것도 이변이다. 아무래도 2년 전 미국 소 수입파동 이후에 쇠고기의 인기가 떨어졌거나 소비자들의 육류 기호가 바뀌기라도 한 모양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구제역 파동 때문에 육류가격은 또 다른 파동요인을 가져왔다. 백신을 맞히면 육류 청정국 지위를 잃을까 염려하여 도살을 감행하더니 가축은 가축대로 잃고 결국 백신도 놓아야 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일도 있다.
삼백만 넘는 소 돼지의 마구잡이 매몰이 토양 오염이라는 환경재앙을 가져온 것은 또 다른 후유증이다.
4대강을 개발한다며 강바닥을 파헤치더니, 뒤늦게 지천정비라는 역순의 개발 사업이 또 헛웃음을 짓게 했다. 물이란 상류부터 하류 쪽으로 내려오며 다스려야 하는 법인데, 하류에서 실컷 파헤치다가 아무래도 위에서 떠밀려오는 토사를 감당할 수 없으니 그제야 상류를 돌아보는 꼴이다. 장마가 들자, 무작정 파헤친 낙동강에선 1백년도 끄떡없던 다리들이 무너지고 쌓아올린 제방들도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국책사업’이란 권위 앞에 졸속으로 지나친 환경영향 평가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주택문제는 어떤가. 어떤 곳은 뼈대를 쌓아올린 아파트들이 공사를 멈춘 채 흉물스럽게 방치돼있고, 거기 투자한 건설회사들은 궁여지책으로 파산을 자청하고 있다. 적절한 예상치도 없이 무작정 농지를 밀어 신도시를 세우는 식의 난개발이 가져온, 예상된 결과다. 이렇게 한 쪽에선 짓던 집도 포기할만큼 새 집이 남아도는데, 서울과 수도권 일부지역에선 전세난이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우왕좌왕하는 주택정책에 집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다 같이 혼란하다.
서민물가를 잡겠다면서 공공요금을 인상하는 정부는 대체 무슨 속인지 모르겠다. 휘발유 값을 내리도록 정유사에 압박하면서 정부가 걷는 세금에선 조금도 양보를 안 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정유사인들 순순히 승복하겠는가. 새로 들어선 전경련 회장단은 ‘이만하면 됐지 기업이 얼마나 더 양보해야 하느냐’고 공공연히 불만을 드러낸다. 젊은 대학생들이 한 달여 거리에 나와 외치고 있는 대학등록금 인하 요구에 대해 정부가 대학들의 응답을 기대한 것에 대해서도 전경련은 ‘포퓰리즘 영합’이라고 비판했다. 경제단체 뿐인가. 대통령이 공직자 사회를 향해 ‘썩었다’고 질타하며 개혁을 요구하자 여당 내부에서조차 ‘그런 말할 자격 있느냐’고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마디로 영이 안 선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멀리 그리스의 사태를 보면, 좋은 바다를 두고 힘겹게도 산으로 기어오르는 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재정이 파탄되어 길에는 노숙자가 늘어나고 정부는 유럽연합의 지원을 호소했다. 유럽연합이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자구책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멀어 보인다. 그리스 의회가 긴축재정을 결의하는 바깥마당에서는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몰려와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배가 잘 항해하기 위해서는 노군들이 일사불란하게 노를 저어야 한다. 갑판 밑에 있는 노군들은 앞을 바라볼 수 없다. 단지 지휘자가 북소리를 믿고 움직일 뿐이다. 헌데 북소리가 일정하지 않아서 노 젓기가 힘이 들고 기껏 노를 젓다 보니 배가 좌초할 곳에 가있다든지, 북소리의 완급이 적절치 않아서 불안하게 항해하고 있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 사공이 많아지는 것은 사공들이 건방지거나 어리석어라기보다는 선장이 항로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제대로 지휘를 못해서 생기는 일인 경우가 많다. 믿고 따를 수가 없으면 선원들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선장의 지시를 비판하며 저마다 제 소리로 떠들어대는 게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기실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지 혼란이 일고 있는 것은 국가의 중앙 컨트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탓이 크다. 민생에 최소한의 수단인 식자재의 수급조차 제대로 된 전망이나 계획 없이 우왕좌왕 하는 터에, 그래서 과일 야채 값이 들쑥날쑥이라 서민들 장바구니 들고 시장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지는 터에, 지금 정부가 서민을 위한 정책, 국민을 위한 경제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믿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구멍가게나 자그마한 기업 하나를 꾸리는 데는 즉흥적이고 눈치 빠른 임기응변의 영민함이 충분한 역량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나라 살림이란 장사를 잘해서 흑자를 많이 낼수록 좋은 기업 살림과는 같지가 않다. 예산과 결산은 남고 모자람 없이 잘 들어맞을수록 좋은 것이며, 이익이나 이윤의 창출보다는 국민들 대다수가 수긍하고 자족할 수 있는 상식의 실현이 중요한 것이다. 적어도 국민 계층 사이 갈등이 더 커지지 않고 기본 의식주의 충족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만 있다면, 국민들은 굳이 정치에 간섭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콩 놓아라 팥 놓아라 간섭하려 들 리가 없다. 자고로 등 따시고 배부르면 나랏님 이름자도 잊어버리는 게 백성의 속성이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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