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날아가는 신세대, 기어가는 구세대

정해용 / 기사승인 : 2010-03-08 12:06:19
  • -
  • +
  • 인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여왕 김연아가 이룬 신기록 금메달의 쾌거는 온 국민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쌍거풀도 없는 작은 눈은 유리창처럼 큰 미녀대회 우승자의 그것보다 아름답고, 감격에 겨워 흘리는 눈물은 동화 속 공주의 눈물보다 아름답다.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그 영예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1998년 IMF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힘들어 할 때 세계 여자골프 정상에 우뚝 선 박세리가 국민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준 데 이어, 2002년 우리의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출전사상 최초로 4강 신화를 이룩하며 국민을 열광케 한 데 이어, 김연아의 세계피겨 정상은 또 한 번 대한민국 젊은이의 기상을 온 나라가 절감케 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스포츠에서 뿐이랴. 대한민국의 젊은 두뇌들이 음으로 양으로 각계에서 글로벌 수준의 활약을 벌이고 있다. 젊은이들의 활약은 세계 그 누구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부로 얕볼 수 없게 하는 저력의 원천이다.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른바 ‘國格’이란 개념에 비추자면, 이들 신세대들이야말로 나라의 격을 높여 일류국가의 국격에 걸맞는 활약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신세대들의 뒤에는 그들을 길러낸 기성세대가 있다. 세상의 주목과 찬사를 받고 있는 신세대들을 화려하게 피어난 꽃송이에 비하자면, 그들을 길러낸 기성세대는 그 꽃의 그늘에 가린 어둔 고동색의 가지며 줄기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화려함이나 소박함의 차이로 인해 꽃과 가지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갈채를 받지는 못할지라도, 한 송이 꽃이 피어나기까지 묵묵히 소임을 다한 가지와 줄기는 꽃송이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제 아무리 화사한 꽃이라 할지라도, 춥고 시린 날을 묵묵히 견뎌낸 가지와 줄기가 없었더라면 어디에서 그 화려한 잎을 피울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줄기는 줄기로서 화려하게 꽃피운 자손세대의 영광을 보는 것만으로 자기 보람을 삼으면 그만이다. 가만히 있어도 꽃의 영광은 그것을 키워낸 가지와 줄기에게도 돌아온다. 그런데 그 영광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꽃더러 줄기가 되라고 강요하거나 그 자신이 꽃처럼 화려한 색을 입으려 한다면 그 나무는 나무다운 나무가 되기 어렵다.
요즘 이 나라 어른들이 밴쿠버 영광을 그들 나름 기뻐하는 방식을 보면, 마치 꽃의 화려함을 빌려 더불어 생색을 내려는 유치함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동계올림픽에서 우승한 김연아는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세계선수권이라는 또 하나의 큰 대회를 앞두고 있다. 캐나다에서 현지 훈련을 계속한 뒤 이탈리아로 옮겨가 곽민정과 함께 토리노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대회가 임박한 선수에게 하루 이틀의 휴식과 안정, 훈련의 계속은 매우 중요한 터. 그러나 김연아는 그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귀국하는 선수단을 따라 일시 귀국을 해야 했다. 1박2일간 반짝 귀국의 목표는 단 하나. 청와대 축하오찬에 참가하는 것. 밖에 나가 큰 성공을 거둔 젊은이가 가장 먼저 돌아와 나라의 어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것은 전통적 예의로 보아 지극히 타당한 일일 것이나, 그가 며칠 뒤 또 다른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틈에 굳이 지구 반 바퀴나 되는 거리를, 시차로 인한 생체리듬의 변화의 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돌아와 인사치레를 갖추고 되돌아가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 정치지도자에게 이토록 깍듯이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권위주의적인 나라로 되돌아간 걸까.
오랫동안 나랏일에 입을 다물며 병치레중이라고만 알려진 김종필 전 총리가 김연아의 쾌거에 기운을 차렸는지 느닷없이 입을 열어 한 신문에 특별 기고를 했다. ‘김연아의 쾌거는 전율 그 자체였다. 이제 대한민국은 빙상 경기의 변방이 아니라 그 중심에 우뚝 섰다. 모처럼 일군 ‘빙상 강국’의 위상을 견지하고 더욱 높여나가기 위해 빙상 투자에 힘을 쏟아 계속 꿈나무를 키워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 규모의 빙상경기장을 조속히 건립하자. 외국인의 인지도나 친밀감을 고려해 ‘김연아 콜리시엄’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을 것이다.‘
국민적 체육 건강환경 조성보다는 생색내기 좋은 엘리트 체육에 지원을 집중했던, 옛 전제주의시대의 체육정책들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자면 국가 재정상 쉽지 않을 것이니 10대 대기업이 중심이 되어 뜻을 모으길 기대한다’고 끝을 맺는다. 걸핏하면 기업과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쓰던 옛 시대의 모습까지 오버랩된다. 글쎄, 이제 구시대적 권위주의며 한탕주의는 뒤로 물러설 때가 된 것 아니던가.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