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화 화가로 잘 알려진 동양화가 김규태 화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계획 중이다. 김 화백은 브라질을 비롯해 일본, 미국 등에서 총 2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목우회전, 신작전 등 유수 그룹전에 200회 이상 참여했다. 현재 그는 미국 뉴저지주 잉글우두클립스에 거주하면서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그는 지난 7월 한국문단 제72회 시조부문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본에서 문학인을 대상으로 시ㆍ시조창작회를 창립해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시인들과도 교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의 열정은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에너지처럼 강하고 아름답다. 그가 작품을 하며 품는 ‘남을 위해’, ‘행복’, ‘사랑’에 관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

◇ 미술과의 인연
강원도 정선 출신인 김 화백은 9남매 중에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땅에 그림 그리기를 즐겨했다. 혼자서 땅을 종이 삼아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이 그에겐 가장 큰 기쁨이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 그림에 뜻을 둔 그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들이 있었다. 특히 한국 남종화의 대가인 김옥진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는 사군자를 비롯해 화조, 산수 등 밤낮을 잊고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시작했고 한국 미술계에서 촉망받는 작가로 조명을 받았다.
◇ 동양화를 안고 브라질행
그 후 1982년에 그는 만삭인 아내와 함께 애초 계획했던 미국이 아닌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가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큰 시련이 닥쳤다. 이민사기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지인의 도움으로 브라질행을 선택했지만 그 때의 힘든 상황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오직 그림에만 몰두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모두 그의 아내가 가장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오늘의 위치에 있기까지 그는 모든 공을 아내에게로 돌렸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언어의 장벽과 이민자로서의 갖은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브라질을 비롯해 일본, 중국, 미국, 한국에까지 그의 작품이 빛을 발하고 있다.
브라질 국립박물관에 동양인 최초로 그의 작품 한 점이 전시되고 있다. 그는 브라질 국회의사당 전시실에서 장관 및 의원의 축하를 받으며 초대전을 가졌으며 브라질 국영방송 프로그램에도 생방송으로 소개된 바 있다.
방송이 나간 후 브라질 곳곳에서 초청이 들어오는 등 그의 작품이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브라질 전직 대통령 3명을 만났을 정도로 브라질에서는 꽤 영향력 있는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브라질 ITU대학에서 5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화를 비롯해 한국문화에 대해 강의했다.
지난 2003년 브라질의 대표적인 정치단체인 OPB(Oedem dos Parlamentares do Brasil)로부터 ‘Conselho Federal’과 ‘Titulo Ulysses Guimaraes’ 인증서를 받았다. 당시 그는 브라질 정부 국제미술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더불어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수여하는 ‘Top of Quality’에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또 그는 일본 도쿄 비스추세카이 화랑 전속작가로 일본인 소장자들 중심으로 후원회가 결성돼 있는 등 최고의 인기 작가로 대우 받고 있다. 후원회원 중 한 일본 교포는 작품 2점을 한국 전라도의 한 미술관에 기증한 적도 있다.
◇ 그림의 진화
그는 이민생활 중 신비한 체험을 겪고 기존에 추구하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김규태화법을 만들어냈다. 1990년대 말 그는 그림을 그리다 어떤 영(靈)이 들어와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아내가 무서워 할 정도로 그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그림을 그려나갔다.
열흘 정도 밤낮으로 엄청난 우주적 에너지 감각에 전신이 휩싸이더니, 풍윤한 색채와 형채의 향연으로 빠져들었다. 통상적인 수묵그림이 아닌 내면세계가 다양한 형상으로 자기 스스로 그려지는 완전히 새로운 그림들이 나타났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그린 것”이라고 밝혔다.
오행의 각 기운과 직결된 청ㆍ적ㆍ황ㆍ백ㆍ흑의 다섯 가지 기본색인 오방색의 풍치와 민속화풍의 가벼움이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된다. 오방색은 한국색이며 한국의 단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표현의 원천을 음양오행이나 오방색 등의 고대사상, 혹은 한국민화 특유의 이미지를 계승하고 있다는 평을 자주 듣고 있다.
“먹의 선은 마음이고 색은 곧 옷을 입히는 것과 같다”는 설명엔 그의 작품관이 잘 나타나 있다. 이를테면 정신과 이 정신을 담을 수 있는 몸을 접목시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는 몸과 맘을 깨끗하게 하고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작품이 걸리는 곳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마음가짐으로 “잘 그리려는 노력보다는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작품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년에 수백점을 한다. 다작이 가능한 것도 작가의 마음에 드는 작품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이 작품에서 행복과 좋은 에너지를 받을 것이기에 쉼없이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작품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예술교류를 통해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그의 정신이다.
◇ 고국에서 첫 전시회
김 화백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지 못했다. 목우회전과 신작전 등 그룹전에는 참가했지만 정식적으로 초대전을 갖진 않았다. 한국화단에선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오랜 이민생활 탓이다. 현재 그의 작품은 외국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그의 입지가 좁은 것은 아니다. 머지않아 개최될 그의 첫 전시회는 한국화단의 큰 획을 그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 김 화백의 매니저가 전시회에 관련해 한국을 다녀갔다. 올해 12월이나 내년 초에 귀국전을 계획하고 있다. 앞서 오는 9월7일부터 9일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개인 초대전을 갖는다. 30여년 전 수묵화 기법을 들고 브라질로 건너간 김규태 화백이 고국인 한국을 찾아와 첫 개인전을 펼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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