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연봉도 이름 값도 ‘NO’ 떠나는 증권맨들

김자혜 / 기사승인 : 2021-09-30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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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 = 김자혜 기자] 이달 초 여의도 증권사 건물 내 카페에 간 적이 있다. 옆자리 앉은 여자는 연신 어딘가에 전화하고 어떤 것을 소개하는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인사담당자인가 싶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40대 전후로 뵈는 사람이 나타났다.


인사를 나누는 걸 보니 남자는 증권사 직원, 여자는 헤드헌터였다.


그들은 간단한 인사 후, 각자 자신이 속한 기업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이 증권맨에게 헤드헌터가 추천하는 기업은 비교적 신생에 속하는 IT기업들이었다. 그는 더 증권가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증권가는 더 이상 엘리트의 꿈의 직장이 아닌 모양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증시 활황이 이어지면서 주요 증권사들은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이와 반대로 지난 7월 애널리스트들의 이직 소식이 나왔다. 그것도 동종분야가 아닌 아예 업종을 전환해버린 사례가 대다수였다.


애널리스트였으나 리서치센터를 떠나 투자은행 부문으로 가거나 국민연금, 제약사 CFO로 이직하는 경우도 나왔다.


특히 주목할 것은 코인거래소,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다. 필자가 엿들은 위 여의도 증권맨 역시 핀테크나 IT스타트업을 추천받은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증권가는 이직이 잦은 분야다. 어떤 인재를 앉히느냐에 따라 대형 거래가 좌우되는 분야에서 연봉은 곧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축구선수 박지성이 뛰었던 영국 프리미어 리그와 유사한 분위기라 볼 수 있다. 한 축구팀이 어떤 선수를 구성하고 어떤 전략을 수행하느냐에 그해 증권사의 우승컵이 달려있는 것이다.


원래 그래왔다지만 증권가 밖으로 인재가 이탈하는 것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앞서 언급된 애널리스트들은 이제 리포트만 잘 써서는 자리매김이 어렵다.


유튜브와 같은 영상에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주가 등락의 적중률도 맞아야 하며 대중친화적인 자세를 갖출수록 인기는 높아진다.


증권사에서 유튜브의 역할이 커지자 미래에셋증권은 미디어센터를 설립해서 전문 3D 스튜디오를 구축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는 유튜브에 출연해 자신의 분석능력을 어필해야 한다. 성향에 맞지 않는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뿐 아니라 최근 MZ세대(연령대 20~40대)가 회사의 간판이나 연봉 만을 맹신하지 않는 세대라는 점도 증권가 이탈에 한몫을 한다.


물론 고연봉에 이름난 기업은 직업을 가진 이에게 매력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MZ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조화)’, ‘번아웃(Burn out, 노력 후 찾아오는 탈진)’ 등이다.


더 이상 베이비붐 세대와 같이 일에, 직장에 헌신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도 충분히 고려하면서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은 시대인 것이다.


투자업계 주니어 직원의 퇴근 시간이 새벽 2시인 점은 워라밸을 지키고 번아웃을 피하려는 MZ세대가 싫어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다.


또 MZ세대는 수직적 기업구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가 기업 운영에 반영되고 성과를 충분히 보상받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경향도 짙다.


이런 이유로 증권맨들뿐 아니라 금융감독원 퇴사자, 대형 연예기획사 CTO까지 카카오페이,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 물류 스타트업 부릉으로 이직한 바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스타트업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곳이다.


다만 전통적인 기업을 떠나려고 고민한다면 새로운 도전에 가려진 실패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조직구조가 잡혀있지 않고 아이디어 위주로 무장한 스타트업 이직의 안 좋은 결과도 가까운 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서다.


반대사례를 보면 소형증권사 이베스트투자증권에서 영업해온 염승환 차장(별명 염블리)은 오래 한자리에 매김해서 빛을 받은 케이스다.


염승환 차장의 유튜브 방송은 ‘동학개미운동(개인투자자 주식투자 유행의 별칭)’에 힘입어 초보 투자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주식초보자를 위해 발간한 책은 100쇄가 넘게 찍었다. 1쇄는 1000권이니 10만 권이 팔린 거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이베스트투자증권의 인지도를 높이고 유튜브 채널을 활성화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염 차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직장 일, 사업하시는 분 일이 좋다면 안 되더라도 끝까지 해보십시오.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인생이 바뀝니다. 제가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스타트업에서 수평적 구조에 나의 성과와 전략을 충분히 반영하며 개척해 나갈 것인가, 염블리처럼 한자리에서 끝까지 나의 역할을 반추해 내면서 성장할 것인가,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이직자들의 몫이다.


다만 어느 방향이든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용기를 내고 하루하루 작은 문제를 해결하고 싸워낸다는 점에서는 두 선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쪽이든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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