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하늘·땅·벽’에 드리워진 나무그림자로 현실 극복 의지 표현
유화 작품·주요 심볼이미지 조형 작품 설치로 심연의 공간 입체화

‘쉼과 명상’을 주제로 30여 년 작품세계를 일궈온 서양화가 박진흥의 개인전 ‘광기 光記 : 드리워지다 Archive of the Light: Cast’가 갤러리 반디트라소에서 다음달 6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전환기에 접어든 시점에 열리는 첫 번째 무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작가는 그동안 ‘쉼과 명상’을 주제로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자아를 대변하는 인체 심볼 이미지와 오브제들을 캔버스에 그려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마음의 현상학을 과감하게 확장한 회화와 설치작품 30여 점을 무대에 올린다.
약 한 달간 개최 열릴 이번 전시엔 작가와 평론가가 함께 하는 ‘라운드테이블’도 마련될 예정이다. 작품세계의 전환을 맞이한 계기와 향후 작업의 방향, 그리고 현재 전업 작가들이 고민하는 작품세계의 확장성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제언들이 펼쳐질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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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리워진 나날들, 45.5x53cm, Oil on Canvas, 2024 (9) [세이아트(SayArt) 제공] |
박 작가는 인도의 우드스톡 국제학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된 후엔 델리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호주로 이주하여 웨스턴시드니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가 인간소외에 대한 자발적 물음과 해답을 ‘명상과 쉼’에서 찾는 이유는 어린 시절 인도에서 마주친 무한한 사유에서 기인할 터다. 그는 인도와 호주의 인연을 발판 삼아 현지에서 여러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고 굵직한 공모전에서 출품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그는 강원도 양구 ‘박수근마을’에 정착해 그간 추구해왔던 삶과 작품의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작가 노트에 여실히 드러난다.
“누구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지난날, 나 역시도 때가 되면 따뜻한 빛을 받아 화려한 인생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살아왔다.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빛이 비치는 반대쪽의 음지에 더 어울리는 생명체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버섯이나 이끼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그편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자로서의 삶이 진정한 나의 삶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밝은 빛에 의해 육안으로 보이는 화려한 색색의 형체보다는 공간에 드리워진 단순한 색채와 형체의 그림자가 좋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상으로 꽃을 피운 나무보다는 바닥에 혹은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모습에 더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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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리워진 그 날, 91x116.7cm, Oil on Canvas, 2024 (7) [세이아트(SayArt) 제공] |
"좋은 옷과 보석으로 치장을 한 사람을 마주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서 있는 공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 편하다. 아무리 높고 곧게 뻗어 있는 나무라도 그 웅장함을 우러러보기보다는 겸손하게 빛의 반대 방향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는 형상에 시선이 간다. 마치 그림자는 그 사물의 본질이 외치는 ‘쉼’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의 작품세계의 중심은 ‘쉼’과 ‘명상’이다. 몇 년 전까지 나는 쉼을 갈구하는 자아를 대변하듯 화폭에 늘 놓여 있었던 인간 심볼이미지와 오브제들,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를 그렸다, 사고가 확장되어 인간 심볼 이미지는 조형물로 입체화시켜 다양한 오브제들과 함께 설치작품에 등장시키고 있다. 근간의 나는 나무가 가진 의연함과 초연함에 매료되어 나무 그림자를 즐겨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나무 그림자들을 빈 하늘과 빈 땅, 빈 벽으로 확장하여 그리면서 비움과 채움이 가져오는 쉼과 명상에 대하여 여전히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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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리워진 그 날, 45.5x53cm, Oil on Canvas, 2024 (9) [세이아트(SayArt) 제공] |
아래는 김진엽 평론가가 쓴 박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글의 일부다.
“박진흥은 쉼을 추억과 회상의 상념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추억의 공간은 단지 추억의 상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꿈의 소산이자 인간 심리의 근저에 놓여 있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화면의 그림자가 바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화면의 이곳저곳에서 숨 쉬고 있는데, 그림자는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되지 않는 포괄적인 것을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그림자는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려는 개인적인 몸부림과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고자 하는 소망을 동시에 표현한다. 그래서 그림자는 의식적인 현실의 모든 것들과 조화할 수 있는 상징적 존재로서 ‘추억의 공간’의 원형이 된다. 그림자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며,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감내해 주기도 하고 더 나아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매개체이다. 따라서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허무와 고독은 벗어나야 하는 굴레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또 그림자는 우리가 우리를 구속하는 한계를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림자에는 ‘세계-내-존재’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각성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기투(企投)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박진흥의 ‘추억의 공간’은 무의식의 심연이라는 망각의 정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정원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를 통해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것이다.”
전시장소인 갤러리 반디트라소는 서울 성북구 성북로에 위치한다. 관람 시간은 매일 10:00~18:00이다. 단,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다. 자세한 사항은 갤러리 반디트라소에 문의하면 된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칼럼니스트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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