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말’이 아닌 ‘틀’을 만든 크래프톤, 이번엔 진짜 움직인다

최영준 기자 / 기사승인 : 2025-06-18 0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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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부 최영준 기자

[토요경제 = 최영준 기자] 요즘 게임업계에선 AI가 빠지면 대화가 안 된다. 발표장에서도, 기자간담회에서도, IR 자료에서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게임 개발에 접목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운영 효율화나 NPC 자동 응답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정작 뭔가 나온 ‘결과물’은 보기 힘들다. 말은 많은데 실체는 모호하다.


그런 점에서 크래프톤이 공개한 AI 벤치마크 ‘Orak’은 분명히 다르다. 

 

이름은 가볍지만, 내용은 무겁다. 이건 단순히 기술을 소개하는 자료가 아니다. AI가 게임 안에서 실제로 ‘얼마나 잘 플레이할 수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그것도, 크래프톤 내부용 툴이 아닌 누구나 쓸 수 있게 공개된 체계로 말이다.

Orak은 액션·RPG·전략·시뮬레이션 등 6개 장르의 대중적 게임들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각각의 장르에서 AI가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짜여 있다.

‘AI가 얼마나 사람처럼 게임을 이해하고 움직일 수 있나’를 수치로 보여주는 장치인 셈이다. 기존 AI 시스템이 주로 ‘단일 상황’이나 ‘특정 모델 성능’을 평가했다면, Orak은 게임이라는 복잡계 안에서 AI의 종합적 능력을 측정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이 벤치마크의 기반이 되는 기술도 흥미롭다. ‘MCP(Model Context Protocol)’라는 시스템이 핵심인데, 이는 게임의 다양한 상태 정보를 텍스트로 요약해 언어모델이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고, 그 결과를 다시 게임 내 행동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액션 게임이라면, AI가 “장애물이 앞에 있다”는 정보를 텍스트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점프할지 회피할지 선택한다. 그 과정을 마치 인간 게이머처럼 설계하려는 시도다.

이 기술적 시도는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크래프톤은 이미 엔비디아와 함께 ‘CPC(Co-Playable Character)’라는 AI 캐릭터를 공동 개발한 바 있다. 유저와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는 AI 파트너라는 콘셉트였다. 당시는 콘셉트나 비전 위주였지만, Orak을 통해 실제 실험·측정이 가능한 틀로 발전한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래서 게임은?”이라는 질문이 남을 수 있다. 크래프톤은 AI로 유명한 회사가 아니고, PUBG 이후 압도적인 흥행 신작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Orak과 그를 둘러싼 행보는 ‘게임 없는 기술 자랑’과는 결이 다르다. 기술을 기준으로 만들고, 생태계를 열고, 외부 연구자들에게 문을 여는 방식은 단순한 기술자적 만족감을 넘어선다.

실제로 크래프톤은 Orak을 기반으로 한 LLM 에이전트 설계 대회도 준비 중이다. 외부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Orak을 활용해 자신만의 AI를 테스트하고 겨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기술력을 ‘인프라’로 포지셔닝하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크래프톤이 올해 세계 최고 권위의 AI 학회인 ICLR과 ICML에 총 10편의 논문을 채택시켰고, 이 중 3편은 ICLR Spotlight에 선정됐다는 사실이다. 게임회사로선 드문 일이다. “우리는 AI 잘해요”라는 마케팅성 발언이 아니라, 진짜 글로벌 연구 생태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AI로 당장 흥행작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시장도, 유저도, 기술도 그 단계를 요구하진 않는다. 하지만 누가 가장 먼저 움직이고, 누가 기준을 만들며, 누가 생태계를 준비했는지는 나중에 분명히 드러난다.

크래프톤은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도 말이 아닌 ‘틀’을, 계획이 아닌 ‘기준’을 만들면서 하고 있다. 게임보다 먼저 기술을 내놓는 이 회사가 결국 게임으로도 ‘결과’를 만들 수 있을지, 이제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토요경제 / 최영준 기자 cyj@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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