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배터리 공장 일정까지 흔드는 미국 비자 리스크
공급망 불안·정책 변수로 번진 기습 단속의 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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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토요경제 = 최영준 기자] 미국 정부의 기습 단속으로 구금됐던 한국 대기업 및 협력사 직원들이 최대 8일 만에 귀국했지만 긴장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10대 그룹을 포함한 국내 주요 기업들은 수십조원 규모의 대미투자를 이어가면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자 제도와 현지 인력 확보 문제를 사업 전략의 핵심 리스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현재 삼성전자·삼성SDI·SK하이닉스·SK온·현대모비스·현대제철·한화큐셀, LG에너지솔루션, 현대차 등 현지에서 대규모 공장 신증설을 추진 중인 20여 개 국내 대기업은 공통적으로 비자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전문인력 비자를 적시에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삼성전자는 한 달 이상 텍사스 반도체 공장 출장자는 주재원(L-1) 비자를 받도록 지침을 강화했지만, 비자 발급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근본 해법은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고객사 미팅 외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했고 현대차 역시 필수적이지 않은 경우 출장을 보류하고 있다.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6’ 참가를 준비하던 현대차도 예년보다 늦은 10월에야 출장 인원과 방식을 확정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해외 전문가를 불러 훈련시킨 뒤 미국인이 직접 일하도록 해야 한다”며 비자 제도 개선을 거론했지만,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공장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숙련 인력을 미국 내에서 충당하기 어렵다.
특히나 미국 내에서는 반도체·배터리 라인은 ‘3D(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 업종으로 인식돼 현지 인력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더욱 어려운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대기업에서는 수조원, 수십조원을 들이는 대규모 대미 투자가 진행 중인데 비자 같은 외생 변수가 발목을 잡으면 투자가 조심스러워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비자 행정 절차를 넘어 한·미 산업 협력의 신뢰를 시험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비자 발급 지연이 장기화되면 반도체와 배터리 공장 준공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에도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제조업 리쇼어링을 위해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은 이번 사태의 배경을 이해하는 핵심 제도다.
두 법안 모두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앞세워 미국 내 생산을 끌어들이는 대신, 일정 수준 이상의 현지 고용·투자 조건을 기업에 요구한다.
현지 인력으로 기술 공정을 전환하려는 장기 전략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비자 발급 강화와 맞물려 한국 기업에게 인력 공백을 확대시키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투자 전략에도 미묘한 변화 조짐이 나타난다.
일부 대기업은 보조금 수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현지 인력 채용·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비자 규제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경우 신규 공장 착공 시점을 뒤로 미루거나 투자 지역을 다변화하는 시나리오도 논의된다.
또 대규모 반도체·배터리 라인을 짧은 기간 내 완공하려면 한국 기술 인력의 직접 투입이 필수인데, 비자 발급 차질이 길어지면 생산 일정이 불가피하게 지연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공장 준공 문제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에도 변수를 남기며 한·미 산업 협력의 신뢰에도 장기적인 긴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제기된다.
미국 정부가 보호무역적 시각을 강화하고 현지인력 양성 기조를 유지한다면 한국 기업은 투자 속도 조정이나 대체 시장 모색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단속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보면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현지 공장에서 근무하던 한국 대기업 및 협력사 직원 다수가 불시에 체포돼 이민·노동법 위반 여부를 조사받으며 최대 8일간 구금됐다.
체포 직후 기업들은 주재원과 파견 직원의 신원을 파악하고 영사 조력을 요청하는 등 비상 대응에 나섰다.
해당 직원들은 대체로 현지 공장 건설·가동 초기 단계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던 엔지니어와 기술 지원 인력이었으며 갑작스러운 구금으로 일부 공정이 일시 중단되는 등 현장 차질이 불가피했다.
이 사건은 단순 비자 행정 이슈를 넘어 대규모 해외투자 환경에서 언제든 외교·정책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을 업계 전반에 각인시켰다.
토요경제 / 최영준 기자 cyj@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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