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한국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긴급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하 인플레법)의 목적은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그리고 대기업 증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허울 좋은 대외 명분일 뿐 철저한 미국 산업, 제조업을 키우기 위한 속셈이 깔려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한 전기차나 태양광 모듈 등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 궁극적으로 '메이드인유에스에이'를 늘리겠다는 계산이다.
바이든은 집권 이후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부르짖었다. 미국이 기획, 설계, 개발한 많은 제품의 생산을 해외에 위탁함으로써 자국 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화, 고용 창출과 부가가치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되돌리겠다는 게 그의 핵심 논리다. 이미 시행에 들어간 반도체법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미국 내 반도체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동시에 해외 기업들에게 미국 내 투자를 강요(?)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심산이다.
‘인플레법’ 등 바이든의 미국 제조업 진흥정책은 정치적으로도 여러 목적을 깔고 있다. 초강대국을 꿈꾸는 미국의 최대 라이벌로서 이미 클 만큼 는 중국을 집중적으로 하고 동시에 11월 중간선거를 위한 표심 몰이로 삼겠다는 구상이 내포돼 있다는 게 미국 정치권의 보편적인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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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경제 조봉환 발행인 겸 대표이사 |
사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현재 바이든의 민주당은 야당인 공화당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을 위시한 민주당은 철저한 자국 국익 위주의 법과 정책들을 통해 여론을 몰아 역전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바이든이 인플레법 서명식에서 "국가는 변화할 수 있다.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며 애써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야당인 공화당은 예상대로 상원과 하원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바이든 정부의 이러한 복잡다단한 계산이 숨겨진 인플레법의 조기 서명으로 헷갈리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재계의 몫이 됐다. 안보동맹을 넘어 경제동맹, 기술동맹, 반도체동맹을 강조하며 구애하던 바이든이 뒤로는 철저한 자국 산업 위주의 정책을 하나하나 시행하면서 대한민국 주력산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방한 때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을 만나 대규모 미국 내 투자를 유도했던 바이든의 반도체법과 인플레법 서명은 결국 우리입장에선 뒤통수를 세게 맞은 셈이 됐다.
바이든과의 장시간 독대를 통해 바이든과의 친분을 자랑하고, 미국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고 선언한 정의선 회장은 심한 배신감에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인플레법 시행으로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는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해 테슬라, GM 등 미국업체에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공산이 크고, 계획된 미국 시장 공략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현대차그룹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미국은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의 최고 우방국이다. 한국전쟁 이후 70년간 한국과 미국은 흔들림 없는 우호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경제는 다르다. 자국의 실리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미국의 인플레법과 반도체법 시행으로 확인됐다. 철저한 자국 위주의 정책 기조는 사실 트럼프나 바이든이 다를 게 없다. 국익과 실리를 위해선 하루아침에 우방국의 등에 칼을 꽂아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첨단 소재를 무기로 전쟁을 벌인 일본이나, 사드배치를 이유로 막대한 피해를 준 중국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적어도 경제 분야에선 영원한 우방이나 혈맹이 없다는 것을, 우리 정치권이나 경제계도 각성하길 바란다.
토요경제 / 조봉환 발행인 ceo@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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