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부실 해소보다 민심이 먼저"...전기료 인상행진 멈췄다

양지욱 기자 / 기사승인 : 2023-06-21 17: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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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3분기 전기요금 일단 제자리...국민 부담 우선 고려
작년 2분기 이후 6분기만의 동결...한전 적자 더 늘어날듯
45조원대 누적 적자에 4분기 추가 인상요인 여전히 남아
▲한전이 21일 전기요금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13일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자식전력량계 모습. <사진=연합뉴스제공>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는 게 걱정이지만, 국민 부담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다." 전기요금 추가 인상을 놓고 한전의 부실과 민심 사이에서 고민해온 정부가 결국 민심을 택했다.


3분기 전기요금 조정을 추진해온 정부가 일단 인상을 멈추고 동결키로 했다. 작년 2분기 6.9% 인상을 시작으로 5분기 연속 계속된 전기요금 행진을 6분기만에 멈춘 것이다.


전력 공기업 한전의 막대한 누적적자에서 비롯된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추가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한전과 에너지업계의 주장은 여론을 의식한 정부에 입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기요금의 동결로 가스, 수도 등 다른 공공요금 조정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고물가, 고금리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들과 자영업자, 기업들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곪을 대로 곪아 있는 한전의 부실 문제는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 한전, kWh당 10.2원 인상 요구, 당정에 의해 묵살

올해 1분기와 2분기 연속 오른 전기요금이 3분기(7∼9월)에는 동결됐다. 한전은 올해 3분기 연료비조정단가(요금)가 현재와 같은 1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된다고 21일 밝혔다.


한전이 당초 3분기 전기요금을 kWh당 10.2원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에 제출했지만, 정부는 당정 협의 끝에 소폭 인상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 등 4가지 요건으로 구성된다. 이중 요금조정을 결정하는 요인은 전력량 요금과 연료비조정요금인데, 모두 동결됐다.


연료비조정단가는 전기요금 분기 직전 3개월간의 에너지 원재료비 변동 상황을 반영해 산정한다. 매 분기 시작 전달의 21일까지 정해진다.


해당 분기 직전 3개월간의 유연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비 변동 상황을 전기요금에 탄력적으로 반영한다. 변동 범위는 kWh당 ±5원 내에서 적용하며 2분기 기준, 현재 최대치인 5원이 적용 중이다.


이처럼 연료비조정단가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한전은 가장 핵심 요소인 전력량요금을 포함한 다른 전기요금 항목을 조정하지 않아 결국 3분기 전기요금은 전체적으로 동결됐다.


미세 조정 성격의 연료비조정단가는 산업부 고시와 한전 전기공급약관의 운영 지침에 따라 한전이 산업부에 인상 요인을 제출하면 정부가 의견을 취합해 결정한 뒤 공표한다.
 

▲'불평등을 넘어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정부의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공>

 

■ 내년 총선 앞두고 민심 고려 전기요금인상 속도조절

정부가 한전의 추가인상 요구를 일축하고, 3분기 전기요금 동결 조치를 단행한 것은 국민여론, 즉 민심을 철저히 반영한 결과로 읽힌다.


전력업계와 전문가들의 한전 부실해소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론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 정부는 지금은 민심을 챙길 때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앞서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부담을 고려할 때 인상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내년 4월 총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게 중론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10개월도 채 안남은 상황에 민심을 자극할 수 있는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전기는 물론 가스, 수도,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은 절댓값에 비해 국민정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단 몇원의 소폭 인상에도 국민 여론이 들썩인다.


정부와 여당으로선 이미 거대 야당에 밀려 국정운영이 어려운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년 총선에 올인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당정은 5분기 연속 이어져온 전기요금 인상행진을 전략적으로 멈출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릴 법도하다.


업계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기 등 공공요금의 정치화하면서 애꿎은 한전만 부실이 쌓이며 피해를 보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의 생각은 단호하다.


정부는 지난달 2분기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8원 올린 데 이어 전력 사용이 급증하는 여름을 앞두고 한달 만에 또 요금을 올릴 경우 국민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13일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자식전력량계 모습. <사진=연합뉴스제공>

 

■ 전력구매단가 하락과 국제에너지값 하향세도 작용

최근 정부 안팎에서 원유 등 국제 에너지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여 한전의 '역마진'이 축소되는 추세여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속도조절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기존의 대폭 상승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사실 지난해 배럴당 110달러를 웃돌았던 국제유가는 5월에 74.96달러까지 떨어진 데 이어 이달엔 74.25달러 수준에서 횡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전의 전력구매단가도 하락세다. 작년 12월 ㎾h당 177.7원이었던 전력구매단가는 지난달에는 144.0원로 20%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시절 전기요금의 인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한전의 역마진으로 인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너난데다, 여전히 전기매입단가 대비 판매단가가 낮은 역마진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정부가 누구보다 잘 아는 사항이다.


당초 정부 스스로도 올해 필요한 전기요금 인상 폭을 ㎾h당 51.6원으로 산정했다. 지난 1분기와 2분기를 합해 누적 요금 인상 폭은 ㎾h당 21.1원에 그친다. 아직 kWh당 30원 가량 인상요인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렇듯 한전 부실을 뒤로 한 채 민심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현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 내년 4월총선 시즌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들어 정부는 부쩍 민심 달래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게 곳곳에서 포착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최근 라면 업계에 대한 우회적 압박을 통해 라면값 인하를 적극 유도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국민 간식' 라면값은 전기요금과 마찬가지로 서민들에겐 매무 민감한 품목이다.

 

▲한전이 강력한 자구노력과 전력구매단가 하락으로 3분기 흑자전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2일 열린 한전의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대회' 장면. <사진=연합뉴스제공>

 

■ 한전 흑자전환 가능성...총선 감안 당분간 인상 안할듯

이제 관심은 4분기 전기요금 조정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고물가와 고금리로 등돌린 민심을 달램으로써 내년 총선 승리를 이뤄내기 위한 정부와 여당 내의 강한 의지를 고려하면 4분기 전기요금도 동결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간의 전기요금 인상과 에너지가격 하락으로 한전의 적자폭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누적적자가 위험수위에 도달해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한전의 주장은 총선 시즌이 가까워질 수록 힘을 내기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에너지 가격이 하향 안정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아직 예측 수준이긴 하지만 후반기에는 전기요금, 가스요금이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며 요금 인상이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여기에 한전의 강력한 자구노력과 최근 전력구매단가 하락세가 맞물리며 3분기에 한전이 흑자 전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4분기까지 전기요금 동결 추이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 3분기에 한전이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16일 “올해 2분기까지 점진적으로 오른 전기요금이 연말까지 유지되는 가운데 비용 감소 효과가 더해져 한전이 영업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며 3분기에 1조8150억원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전쟁 악화 등으로 에너지위기가 재연될 수 있고, 한전 누적 적자가 45조원에 달해 전기요금 추가 인상 필요성은 여전히 크다"고 전제하며,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민심에 반하는 정책결정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 전기요금의 의미있는 인상 시기는 총선 이후로 넘어갈 수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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