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사진=자료 |
[토요경제 = 최성호 기자] 김준기 DB 창업회장에 대한 검찰 고발은 단순한 자료 누락 사건이 아니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지분율이 낮은데도 어떻게 지배력을 유지했는가’라는 질문이다. 공정위가 밝혀낸 구조는 명확하다. 지분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통제, 즉 재단과 특수관계 법인을 활용한 우회 지배다.
8일 업계에 따르면 DB그룹 내 핵심 축은 DB아이엔씨와 DB하이텍이다. 특히 DB하이텍은 비금융 계열사 가운데 재무 규모가 가장 크지만 김 창업회장 측 지분율은 23.9% 수준에 그친다.
통상 이 정도 지분율은 안정적 지배 구조라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경영권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유는 재단회사들의 존재다.
공정위에 따르면 동곡사회복지재단과 산하 법인 등 17개 재단·회사들은 단순 공익 목적 조직이 아니었다. 이들 법인은 자금 거래, 자산 매입, 내부 인사 배치 등을 통해 사실상 총수 측 의중에 따라 움직였다.
2016년에는 해당 법인을 관리하는 별도 직위까지 설치해 통제 체계를 제도화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는 일시적 협조 관계가 아니라 구조적 관리였다는 의미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자금 흐름이다. 재단회사들은 2010년 DB하이텍의 재무 개선을 명목으로 계열 금융사에서 자금을 차입해 부동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이동시켰다.
겉으로는 정상 거래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핵심 계열사의 부담을 완화하고 총수 측 지배력을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크다.
또 다른 문제는 총수 개인과의 자금 거래다. 김 창업회장은 2021년 재단회사 빌텍으로부터 220억원을 대여받았고, 중도 상환과 취소를 반복하면서 수수료 부담도 지지 않았다는 것이 공정위 설명이다.
공익 재단 자금이 총수 개인의 유동성 창구처럼 활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이 파장을 키우는 이유는 ‘지분 기준’ 중심의 전통적 계열 판단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거래 관계, 인사 구조, 의사결정 관여 정황 등 실질 지배 요소를 종합해 계열성을 인정했다. 이는 앞으로 다른 대기업 집단에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재계에서는 이번 고발을 두고 “총수 리스크가 곧 그룹 리스크가 되는 시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DB하이텍이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된 상황에서 지배구조 논란은 단순 내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ESG 경영과 투명성 기준이 강화되는 국제 시장에서는 지배구조 리스크 자체가 기업 가치 할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이번 사안은 창업주가 재단을 활용한 우회 지배, 지분 희석 구조 속 영향력 유지, 내부 통제 장치의 사적 활용 가능성까지, 한국 대기업 집단이 오랫동안 반복해온 총수 중심 경영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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