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 엔화환전 및 예수금 급증세...日 주식 투자 열풍도
日기업 가격경쟁력 높아져 韓전기차, 배터리 등 수출에 마이너스
| ▲ 원엔 환율이 8년만에 장중 900원이 무너지며 엔저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엔 환율이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제공> |
엔화가치 하락이 심상치가 않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이 초긴축을 이어가는 가운데 일본 중앙은행(BOJ)만이 유독 양적완화 정책을 고수하자 엔화가치가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원엔 환율은 19일 장중 900원벽이 무너지며, 8년만에 최저 수준에 도달했다. 시장에선 바닥권을 향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재의 흐름을 보면 엔저(円低)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엔저 현상은 비단 원화에 그치지 않는다. 엔/유로와 엔/달러 환율 역시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 통화당국은 지난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단기금리를 마이너스(-0.1%) 상태로 동결했다. 약엔 정책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일본의 전략적인 엔저 전략은 '노재팬'의 기조를 '바이재팬'으로 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금융시장에 외국 자본이 몰리며 니케이 225지수가 33년만의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일본여행 수요가 몰리고 있다.
역대급의 엔저는 한국 경제, 특히 수출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엔저는 글로벌시장에서 일본제품, 일본기업의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게 뻔하다. 사상초유의 수출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엔저라는 또다른 돌발악재에 직면했다.
■ 日 마이웨이식 긴축완화에 엔화가치 속절없이 하락
19일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100엔당 800원대에 진입했다. 이날 오전 8시 23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897.49원으로 고시됐다. 원엔 환율이 800원대까지 내려온 것은 지난 2015년 6월 말 이후 8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원화가 엔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낸 것은 일본정부의 긴축완화 정책에 반도체 시장 회복 기대감에 힘입어 한국 주식시장으로 외국인 순매수 흐름이 이어진 것을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국내 금융계에선 원엔 환율이 단기적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며 단기 저점으로 100엔당 890원 선을 제시하고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강하게 상승하면서 반도체 주식들이 최근 다 같이 랠리를 펼쳤다"며 "그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반도체 주식을 많이 사면서 원화 강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엔화는 원화는 물론 달러·유로 등에 대해서도 모두 약세다. 지난 15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엔화는 1유로당 152엔을 돌파하며 2008년 9월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엔/달러 환율 역시 달러 당 141엔대까지 상승하며 작년 11월 이후 7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저의 가속화는 기시다정부의 마이웨이식 긴축완화 정책 탓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유럽의 통화 긴축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은 사실상의 마이너스금리를 이어가며 전략적으로 양적완화 정책을 고수, 엔화 가치를 계속 끌어내리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통화정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최근 "물가하락 속도가 생각보다 늦은 면이 있지만 아직 하락 국면의 시작 단계라고 생각한다"며, "올해 중반 이후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미·일 금리차가 크게 벌어진 데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현상으로 엔화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올해 하반기 미국 10년물 금리가 하락하고,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축소되지 않는다면 엔저현상은 예상보다 길고 깊게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다.
| ▲ 엔저시대를 맞아 일본 여행객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사진이 여행객들이 북적거리는 공항 모습. <사진=연합뉴스제공> |
■ 엔화 환전액 1년새 5배...일본주식 투자 열풍 확산
엔저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에선 바이재팬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상위 8개 증권사에 예치된 엔화 예수금과 일본 주식 평가금액은 15일 기준 총 4조946억2천만원으로 작년 6월말(3조1916억원) 대비 28.3%) 급증했다. 지난 1월 말(3조 4924억5천만원)과 비교해도 17.2% 증가했다.
일본 주식투자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순매수 규모는 총 3441만7천달러(약 441억원)이다. 이달엔 이미 1851만3600달러(236억원) 매수했다. 최근 두 달 순매수는 2021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의 순매수 규모(401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역대급 엔저 현상에 일본 증시의 강세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국내 투자자들의 바이제팬 열풍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일본 증시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지난 14일 3만3502.42엔으로 거래를 마쳤다.
닛케이지수가 심리적 저항선으로 불리는 3만3000엔을 넘긴 것은 거품경제 시기인 1990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일본 여행과 환차익을 노리고 원화를 엔화로 바꾸는 환전 규모도 작년 이맘때의 약 5배에 이른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5월 기준 엔화 매도액은 301억6700만엔(약 2732억원)이다. 이는 4월에 은행이 고객의 요구에 따라 원화를 받고 엔화를 내준(매도) 환전 규모가 한 달 새 73억2800만엔 증가한 것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배 가량 급증한 것이다.
문제는 이례적인 엔저현상이 일본 국내외 금융시장의 흐름에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무엇보다도 엔화가치 하락이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란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엔화가치가 떨어지는 엔저현상은 일본 제품의 달러 표시가격이 낮아지는 효과로 일본상품의 수출 확대에 도움이 된다.
|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간) 디트로이트 미일반도체 회담 후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 <사진=연합뉴스제공> |
■ '엔저'를 기회로 삼기 위한 치밀한 대응책 마련 필요
역설적으로 엔저현상이 해외시장에서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일본과 수출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10% 하락하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15억달러 가량 악화된다.
무역적자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벌이고 있는 수출당국으로선 엔저란 새로운 변수를 만나 무역적자 탈출의 새로운 악재를 만난 셈이다.
실제 국내 주력 수출품의 절반 이상이 일본과 경쟁 또는 경합관계에 있다. 우리나라로선 엔저로 인해 일본 수출기업들이 가겨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현상이다.
여기에 일본은 최근 첨단제조업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대한민국이 강점을 지닌 반도체, 배터리, 가전, 전기차, 로봇, 조선, 철강 등 여러분야에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특히 우리나라가 총체적 부진의 늪에 빠진 반도체 분야에선 막대한 정책자금을 쏟아부워 한국, 대만,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의욕을 숨기지 않는다. 미중 반도체 갈등을 기회로 삼기 위해 최근엔 미일 반도체 공동성명까지 발표하며 대대적인 투자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8개월 연속 수출감소에 1년이상 무역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선 일본의 반격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첨단산업 전부문에서 중국, 대만 등과 버거운 승부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 전통의 첨단 제조업 강국 일본이란 결코 만만찮은 상대까지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한일관계가 빠른 속도로 호전되며 경제협력 및 교류 분위기가 조성돼 한국인의 일본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서비스 수지, 나아가 경상수지 악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엔저현상은 일본 정부의 고도의 계산과 전략이 깔린 통화정책이 빚어낸 부산물이란 점에서 단기적인 현상으로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라며 "엔화가치 하락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기 위한 범정부차원에서 치밀한 맞춤형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