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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인의 사랑을 받았던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대포집의 '딱 한잔' 글씨가 을씨년스럽다. <사진 김병윤 대기자> |
안타깝다. 할 말이 없다. 한숨만 나온다. 가슴이 미어진다. 단골손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얼마나 지켜온 가게인데. 젊음을 바친 세월이 얼마인데. 차라리 꿈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네. 눈앞에 벌어지는 참혹한 철거현장. 정든 가재도구와 이별을 고한다. 아무런 작별의 인사도 없이. 폐업하는 점주의 충혈 된 눈에 이슬이 맺힌다.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영업자를 취재하기 두렵다. 말을 붙이기 죄송하다. 고개를 숙이게 된다. 안타까움에 몸이 움츠러든다. 죄인의 심정이다.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모두가 어려운 현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점주들. 오갈 데가 없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방황하는 발길이 머물 데가 없다. 취재에 앞서 동정심이 먼저 든다. 기자는 냉철해야 하는데. 기자의 본분을 잃는다. 마음을 다잡으며 어렵게 말을 건넨다.
광화문의 단골집 몇 군데가 문을 닫았다. 오랜 세월 들락거렸던 허름한 술집이다. 싸고 맛있었던 횟집. 가성비가 좋았다. 콩나물 국물에 번데기가 먼저 반겼다. 오이와 당근도 같이 나왔다. 회가 나오기도 전에 소주 1, 2병은 거뜬히 마신다. 손님도 다양했다. 1차로 먼저 들른 사람들. 옆 좌석은 거나하게 마신 고객들. 아마도 2, 3차인 듯했다. 왁자지껄한 소리. 소리가 커지면 주인이 손짓을 한다. 조용히 하라고. 손님은 웃음을 짓는다. 형님 알았어요. 손님의 다툼이 없었다. 주인이 왕인 가게였다.
주인 A씨. 67세다. 한 자리에서 20년 이상 손님을 맞았다. 고객의 큰형님이었다. 손님의 푸념을 들어 줬다. 인생 상담도 해 줬다. 수익도 쏠쏠했다. 자녀들 공부도 다 시켰다. 시집 장가도 보냈다. 먹고 살만했다. 자녀들은 말렸다. 가게를 접으라고. 고생하지 마시라고. A씨는 거부했다. 자식에게 손 벌리기 싫다고. 이 말은 핑계였다. 손님과의 정이 그리워서였다. 20년 이상 찾아준 고객이 고마워서였다.
A씨의 이런 마음도 코로나에 무너졌다. 고객의 발길이 뚝 멈췄다. 빈 가게를 지켰다. 매달 천만 원 이상 쌓이는 적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종업원을 내보냈다. 부인이 일을 거들었다. 나이 많은 부인이 힘들어했다. 허리에 무리가 와 입원을 했다. 코로나로 쌓인 적자가 2억원이 넘었다. 부인의 병간호도 해야 했다.
결단을 내렸다. 폐업하기로. 철거현장을 차마 볼 수 없었다. 트럭에 실리는 가재도구를 멀리서 바라봤다.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이었다. 트럭이 출발하자 A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탄식과 함께 눈을 감았다.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뒤 몇 마디 한다.
“너무 아쉽죠. 지나간 세월이 그립고. 우리 단골들 얼굴을 언제 볼 수 있을까요. 당장은 부인 건강회복이 우선이죠. 아직은 일할 나이인데. 새롭게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취직은 더 힘들 거고요. 제 나이 칠십이 돼 가는데 누가 쓰겠어요. 저 같아도 안 쓸 겁니다. 일단은 쉬면서 생각해야죠.” A씨는 자물쇠가 채워진 가게를 멍하니 바라본다. A씨의 넓은 어깨가 들썩인다. 아주 작게 오그라든다. A씨 발밑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피눈물이다.
어묵과 따뜻한 정종 한 잔. 퇴근길에 자주 들르던 대포집이다. 안주도 다양했다. 메추리구이 은행구이 닭똥집 등. 다양한 꼬치구이가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겨울에는 자리 잡기가 전쟁이었다. 광화문의 명소였다. 문 닫은 횟집과 이웃사촌이었다. 불과 10미터 정도 떨어졌다. 개업할 때부터 친분을 쌓았다. 장사 잘되는 집으로 소문났다. 코로나 발생 전까지는 그랬다. 이런 호황도 옛이야기가 됐다. 장사 잘 되던 집이 문 닫은 집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임대문의 쪽지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 B씨는 성실의 대명사였다. 안주 손질을 손수 했다. 다양한 안주 개발에 힘썼다. 직접 요리할 때는 신이 났다. 손님의 주문이 겹치면 정신이 없었다. 튀기고 굽고 부치고 1인 3역도 모자랐다. 그래도 좋았다. 사는 맛이 났다. 종업원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영업을 마치면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였다. 하루의 피로를 종업원과 함께 풀었다.
가정 같았던 직장이 어느 날 무너졌다. 손님의 발길이 끊어졌다. 손님이 올 수 없었다. 회사가 재택근무를 해서다. 회사원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회사원이 곧 고객이었다. 임대료와 직원들 월급, 각종 세금은 꼬박꼬박 내야 했다. 수입은 없는데 지출만 쌓였다. 대출로 버텨봤다.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대출을 해야 했다. B씨는 마침내 손을 들었다. 더는 버틸 방법이 없어서다.
B씨는 가게 철거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부인이 대신 나왔다. 어렵게 물었다. 주인 양반은? “아파서 누워 있어요. 몸과 마음이 다 아프겠죠. 왜 안 그러겠어요. 우리 가족의 생활터전이었는데요.” 부인은 담담하게 말한다. “우리 남편 오랫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우선은 남편 건강 회복에 힘 쓸 겁니다. 사람 입에 풀칠 못 하겠어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와 부인은 강하다. 부인의 강함으로 부부가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세종문화회관 뒷골목. 좁은 골목길에 다양한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하다. 술집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가게가 오래 된 건물이다. 불과 1년 전. 깔끔한 음식점이 들어섰다. 해장국집이었다. 인테리어도 세련됐다. 비용도 많이 들었다. 주인 C씨는 50대의 퇴직자였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인생 2모작에 씨앗을 뿌리려 했다. C씨는 주변 술 손님이 해장국으로 속을 풀 거라 예상했다. 장밋빛 꿈을 꿨다.
예상은 벗어났다. 코로나로 술 손님이 없었다. 개업부터 파리를 날렸다. 운영비가 상상을 초월했다. 고민이 시작됐다. 몇 달 전 꿈꿨던 희망은 사라졌다. 코로나의 위력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C씨는 결단을 내렸다. 폐업하기로 했다. 개업 10개월 만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거라고. 어차피 수업료 낸 거로 생각하겠다며 가게를 접었다. C씨는 씩씩한 모습으로 폐업 소감을 밝힌다.
“저는 아직 젊습니다. 100세 시대에 50이면 이제 인생 반 밖에 안 살았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되죠. 걱정 마세요. 저는 해 낼 겁니다. 더 크게 일어설 겁니다.”
50대 창업주의 꿈이 꼭 실현되리라 믿는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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