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당정·여론 압박에 두손든 대한항공...마일리지 개편 "전면 보류"

양지욱 기자 / 기사승인 : 2023-02-22 14: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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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불만에 국토부·여당 강력 비판에 결국 "전면 재검토 계획" 발표
공제기준 '지역'서 '운항거리' 변경이 쟁점...개선안 상당 시간 소요 예상
▲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개편을 통해 부채를 해소하려던 계획이 여론과 정치권 압박에 밀려 전면 보류됐다. <사진=연합뉴스제공>

 

오는 4월1일부터 대대적인 마일리지 개편안을 실행에 옮기려던 대한항공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정부와 정치권이 연신 압박 강도를 높이자 이에 굴복, 당초 계획을 전면 보류한 것이다.


오랜기간 마일리지 개편을 추진해온 대한항공은 4월1일부로 시행하려 했던 마일리지 제도 변경을 전면 재검토하고 당분간 현행대로 유지한다고  22일 공식 밝혔다.


주무부처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9일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제도 개편안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며 압박강도를 높인 지 사흘 만에 두 손 들고 백기투항한 셈이다.


대한항공측은 일단 지난 수 년간 준비해온 마일리지 제도 개편이 시행 40일을 앞두고, 여론에 밀려 중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상당한 시일이 걸리겠지만 소비자 불만을 해소할 새로운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한항공은 보너스 좌석 공급 확대, 다양한 할인 프로모션, 마일리지 사용처 확대 등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일부 개선안은 계획대로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방침이다. 마일리지 복합결제 서비스인 '캐시앤마일즈'도 예정대로 3월 중 달러를 결제통화로 운영키로 했다.

마일리지 부채 줄이기 위한 '무리한 꼼수' 지적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개편안 중 여론 악화와 정치권의 잇따른 비판을 불러온 핵심 쟁점은 좌석 승급 마일리지 공제 기준을 ‘지역’에서 ‘운항 거리’로 바꾸고, 각 등급별로 마일리지 적립를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2019년 12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하는 스카이패스 제도 개편안을 발표하고 올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대한항공은 현재 국내선 1개와 동북아, 동남아, 서남아, 미주·구주·대양주 등 4개 국제선을 권역별로 나누어 마일리지를 공제하고 있는데, 개편안이 적용되면 운항 거리에 비례해 국내선 1개와 국제선 10개로 그 기준을 세분화된다.


대한항공측이 마일리지 공제 기준을 쪼개는 이유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자구책으로 보인다. 마일리지는 대한항공 입장에선 엄연히 부채이며, 공제 기준을 운항거리로 개편, 마일리지 사용량을 늘리는 것은 수익성과 직결된다.


마일리지 사용처를 기내면세품 구매 등으로 확대하고, 마일리지 복합결제를 도입키로 한 것도 결국엔 같은 맥락이다. 현재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부채는 3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3분기 별도 재무제표 기준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부채, 즉 이연 수익은 2조6824억원에 달한다. 2010년말(1조739억원)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이연수익이란 발생 시점의 매출을 수익으로 환산하지 않고, 마일리지 소진시 인식하는 수익으로 재무제표상 부채다. 

 

아시아나항공까지 인수한 것을 감안하면 범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부채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특히 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2019년 12월 당시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무려 814%에 달했다.

마일리지 차곡차곡 모아온 2040세대들 강력 반발

그러나, 대한항공이 골칫거리인 마일리지 부채율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이번 개편안은 역설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선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 

 

공제 기준 변경으로 단거리 구간은 마일리지 사용량이 다소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장거리 구간은 현행보다 마일리지 사용량이 대폭 늘어난다.


대한항공측이 이번 제도 개편이 3만 마일 이하의 마일리지를 보유한 불특정 다수의 승객들에게 유리하다는 논리를 적극 펼쳐왔음에도 설득력을 잃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축적된 마일리지 사용은 단거리 구간 보다는 북미나 유럽과 같은 장거리 노선에 주로 사용한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3만 마일 이하의 마일리지를 보유한 고객은 전체 스카이패스 회원의 90%에 달하지만, 나머지 10%의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문제였다.


일례로 인천∼뉴욕 노선의 비즈니스석을 보너스 항공권으로 구매하려면 지금까지 편도 6만2500마일의 마일리지 필요했다. 그러나 개편안이 시행되면 무려 9만마일이 필요하다. 소비자 입장에선 2만7500마일을 손해보는 꼴이다.


대한항공의 개편안에 대해 많은 소비자들이 마일리지의 절대가치를 떨어트리기 위한 꼼수라며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마일리지를 착실히 축적해온 2040세대의 로열티 강한 고객들의 반발이 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마일리지 항공권을 구입하거나 좌석 승급을 위해 마일리지를 착실히 쌓는 경우는 많지 않은 50대 이상 중장년층과 달리 2040세대들은 마일리지 가치를 순식간에 떨어트린 대한항공애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급기야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개편안이 저비용항공사(LCC)가 운항하지 못하는 장거리 노선 중심으로 마일리지 공제율을 높여 소비자 혜택을 축소했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와 정치권이 가세했다.

한발 물러선 대한항공...'묘안' 마련에 딜레마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9일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과 관련, "코로나 대란 기간 살아남게 해줘 감사하다는 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은 하지 못할망정 불만을 사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노골적으로 대한항공을 비판했다.


원 장관은 이어 "대한항공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진심이고 고객에 대한 감사는 말 뿐이라는 불만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길 바란다"고 압박 강도를 높여왔다. 

 

그는 지난 15일에도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항공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이번 개편안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개진했었다.


여당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은 지난 17일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민이 낸 혈세로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받고 국책은행을 통한 긴급 자금을 지원받은 것을 잊고 소비자를 우롱하면 되겠나"라며 "이제라도 마일리지 공제 방안에 대해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마일리지 개편안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정부와 정치권까지 가세해 대한항공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며 압박수위를 높이자 대한항공도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마일리지 개편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대한항공은 딜레마에 빠졌다. 개편안의 핵심인 마일리지 적립 및 공제기준 변경이 물건너 갔는데, 눈덩이처럼 불어난 마일리지 부채를 마냥 방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대한항공이 기존 개편안이 사실상 백지화되고 새로운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장거리 구간의 마일리지 사용량을 현실적으로 대폭 낮추는 선에서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 인수를 통해 사실상 국내 유일의 국적항공사로서 장거리 항공시장을 거의 장악한 만큼, 자그마한 정책변화에도 소비자나 정치권의 반응이 예민할 수 밖에 없다"고 전제하며 "어떤식으로든 소비자부담을 늘리는 공제기준 변경보다는 마일리지 사용처를 다변화함으로써 부채 부담을 덜 수 있는 묘안을 내놓아야 여론이 동조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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