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공백에 간호사 불법의료 행위에 내몰려
정부, 혼란 줄이려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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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행동이 나흘째 이어지는 2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내 대형모니터에 '전공의 진료 공백으로 정상진료 차질'이라는 안내문이 공지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의과대학교 입학 정원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 간 갈등이 파국 사태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고질적인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이에 맞서는 의협은 환자 생명을 담보로 밥그릇 지키기에 나섰다는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의대 정원 증원만큼은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각오를 내비췄다.
◆의사 10명 중 7명 병원 떠나… 의료공백 현실화
이달 6일 정부가 내년 대학입시부터 향후 5년 동안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매년 2000명씩 증원해 총 1만명의 의사를 늘리기로 한 결정을 발표한 직후, 의협을 중심으로 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10시 기준으로 주요 94개 병원에서 소속 전공의의 약 78.5%인 8897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들 전공의들이 제출한 사직서는 아직 수리되지 않았지만, 이미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가 전체의 69.4%에 해당하는 7863명으로 확인돼 의료공백 사태가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현장을 이탈한 의사들의 면허를 정지하고, 집단행동 주동자에 대해서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며 압박하고 나섰지만, 사실상 지난 2020년 의사 파업 당시 ‘대마불사(大馬不死)’를 학습한 전공의들의 발길을 다시 돌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이 이탈한 의료 현장 역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시내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환자들은 대기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거나,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다른 중형병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막상 새로 찾아간 중형병원 상황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전공의 이탈 사흘째인 지난 23일 서울 관악구의 한 중형 병원 응급실에는 100여명의 응급환자가 몰려들어 일대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평소 이 병원을 찾는 응급환자 수는 80여명 내외지만,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파업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응급환자 수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서울시내의 중형병원을 찾는 하루 환자수가 평소보다 약 40% 이상 급증해 포화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병원 측 역시 모든 의료진을 투입해 응급실을 가동 중에 있다. 하지만 몰려드는 환자 탓에 상태가 더 중한 환자를 우선적으로 진료하는 방식 외에는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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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탁영란 대한간호사협회장이 의사 집단행동으로 불법 의료행위에 노출된 간호사의 보호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전공의 빈자리 간호사들이 채워… 불법의료 행위 내몰려
전공들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대리처방, 치료처치, 수술봉합 등 전공의의 업무를 간호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전공의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간호사들이 불법의료 행위를 하도록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는 23일 오전 의료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협회의 ‘의료공백 위기대응 현장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에 23일 오전 9시까지 접수된 154건의 신고 내용을 공개했다.
이날 협회 측에 따르면, 간호사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대신해 채혈, 동맥혈 채취, 혈액 배양검사, 검체 채취 등 검사와 심전도 검사, 잔뇨 초음파 등 치료·처치 및 검사, 수술보조 및 봉합 등 수술 관련 업무, 비위관 삽입 등 튜브관리, 병동 내 교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처방 등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간호사들이 이 같은 격무에 시달리면서 환자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일손이 부족한 간호사들이 환자 소독 시행 주기를 4일에서 7일로 늘리고 있으며, 주말에도 해야 하는 거즈 소독의 경우 평일에만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탁영란 간호협회장은 “간호사들은 전공의가 떠난 빈자리에 법적 보호 장치 없이 불법진료에 내몰리면서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내고 있다”며 “간호사들이 법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환자 간호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불법진료행위로부터 간호사를 보호할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부는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면 PA 간호사를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임상전담 간호사로도 불리는 PA 간호사는 약 1만명 이상이 수술장 보조, 검사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시 보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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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 '심각' 발령에 따른 대응과 전공의들의 정부와의 대화 촉구를 강조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한덕수 “모든 수단 동원”…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도
전공의 공백 장기화로 의료공백이 심화하자, 혼란을 막기 위한 정부가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기로 했다. 그동안 비대면 진료가 원칙적으로 금지됐던 ‘초진’ 환자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기로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3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을 위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모두발언에서 “오늘부터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해 국민께서 일반진료를 더 편하게 받으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비대면 진료란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화상 전화 등을 활용해 상담을 한 후 약을 처방하는 진료 방식이다.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됐던 2020년 2월 비대면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기도 했지만,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불법이다.
이날 비대면 진료가 전면 확대되면서 의료취약지가 아닌 곳이나, 초진이라도 평일에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은 의료취약지인 경우, 혹은 주말이나 공휴일에만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다.
병원급 이상의 비대면 진료도 대폭 확대된다. 병원급 이상에서는 재진 환자 중 병원급 진료가 불가피한 희귀질환자(1년 이내), 수술·치료 후 지속적인 관리(30일 이내)가 필요한 환자만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었다.
정부의 비대면 진료 확대가 의료계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의료진 공백 사태 속에서 ‘경증환자’를 치료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결국 수술이 필요한 응급환자의 경우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에 앞서 전부는 공공 의료기관 진료 시간 전면 확대 계획도 밝혔다. 모든 공공 의료기관의 평일 진료 시간을 가능한 최대로 연장하고, 주말과 휴일 진료도 확대해 공공의료기관 가동 수준을 최대치로 올려 의사 파업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의협이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두고 강대 강 국면을 이어가는 가운데, 서울대의대 비상대책위는 대화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비상대책위 위원장 정진행 병리학과 교수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주말이 지나면 해결할 수 없는 파국이 올 수 있다”며 “이런 식이라면 병원 진료가 열흘도 버티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현직 의사들이 자리를 떠나고 있는데도, 전공의들에 대한 처벌과 압박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가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길 바란다”며 “이번 주말이 골든타임이라고 느끼고 있다. 주말 동안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는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파국이 닥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토요경제 / 김남규 기자 ngkim@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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