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급증에 물가 강세에 금리인하 타이밍 못잡아
내년 성장률 전망 2.1%로 낮춰… 물가전망은 상향조정
한국은행이 30일 오전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3.50%로 또다시 동결했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통화정책방향회의를 기준으로 하면 7연속 동결이다.
지난 1월 13일 올 첫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3.5%로 올린 이후 10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내년 첫 금통위가 1월 11일로 예정돼 있는 것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의 기준금리가 3.5%의 그물에 갇혀 꼬박 1년간 옴짝달싹 못하는 모양새다.
한은과 7명의 금통위원들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금리를 내리자니 위험수위를 넘어선 가계부채와 다시 고개를 든 물가가 마음에 걸리고, 동결을 반복하자니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경기가 걱정이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제공> |
◇ 꺾이지 않는 가계부채 증가에 만장일치로 '동결'
한은 금통위는 30일 오전 9시부터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갖고 현재의 기준금리(연 3.50%)를 조정 없이 동결키로 했다. 애초 시장의 예상 그대로였다. 특히 7명의 금통위원 중 단 한 명의 이견도 없이 만장일치로 동결을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 2월 금통위에서 금리인상을 멈춘 이후 4·5·7·8·10·11월까지 7회 연속 기준금리를 3.50%로 묶었다.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금통위 통화정책 회의는 3·6·9·12월을 제외하고 연중 8차례 열린다.
한은이 경기침체의 국면전환을 위한 금리인하 대신에 동결한 선택한 것은 경기회복을 위한 금리인하보다 가계부채 급증, 3%후반의 고물가,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2%p) 등을 좀 더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가 한은의 금리인하로의 추세 전환을 가로막는 최대 복병이란 지적이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가계부채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75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규모다. 특히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잔액(1049조1000억)이 1000조를 웃돈다.
지난 10월 가계대출은 은행권에서만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9월 말보다 6조8000억원이나 급증했다. 2금융권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에서도 6조3000억원 뛰었다. 11월에도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선 지난달 오름세를 보인 시장금리가 이달 들어 안정화됐고, 집값 추가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로 주담대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가계부채가 쉽게 꺾이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은 가계부채 관리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은 측은 "물가상승률이 애초 예상보다 높아졌지만 기조적인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가계부채 증가 추이와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도 높은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고 강조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 고금리에 경기부진 악영향… 한은 내년 성장률 더 낮춰
문제는 경제성장률이다. 고물가에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소비가 크게 위축되며 경기회복 속도가 더디다. 반도체의 반등으로 수출이 두 달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한은 스스로도 이날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1%로 낮출 만큼 향후 경기 전망도 밝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3.5%대로 고정한 채 고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경기회복에 부정적 요인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은은 30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는 1.4%로 유지했으나 내년 전망치는 지난 8월 전망치(2.2%)보다 0.1%p 낮춘 2.1%를 제시했다. 한은은 수출의 회복세에도 전반적인 경기 반등 폭이 애초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7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1월호에서 "반도체 등 제조업 생산·수출 회복, 서비스업·고용 개선 지속 등으로 경기회복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분석한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낮추고 있다. 지난 2월(2.4%) 이후 5월 2.3%, 8월 2.2%, 11월 2.1% 등으로 계속 하향 조정해 왔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제시한 2.2%보다도 0.1%p 낮은 보수적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9일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3%로 0.2%p 높인 것과 정반대 양상이다.
산업활동도 부진한 흐름이다. 10월 산업활동동향 통계를 보면 생산(-1.6%)·소비(-0.8%)·투자(-3.3%) 지표가 모두 전월보다 뒷걸음쳤다. 특히 생산은 2020년 4월(-1.8%) 이후 3년 6개월 만에 최대 하락폭이다.
| ▲중소상인ㆍ금융소비자단체 회원들이 지난 19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계부채 축소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 당분간 동결기조 유지될 듯… 美 금리인하 시점이 변수
시장의 관심은 한은의 3.5% 금리동결 기조가 언제쯤 종료되고 긴축완화로의 추세전환이 이뤄질 것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현실적으로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금리인하를 결정할만한 뚜렷한 상황 변화가 쉽게 나타날 가능성이 낮은 탓이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금융권에 대한 대출조정 등 압박강도를 높이고 있는 데다, 다시 고개를 든 물가 흐름이 만만찮은 상황을 한은이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날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5%에서 3.6%로, 내년 전망치를 2.4%에서 2.6%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물가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 느려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변수는 미국의 기준금리인데, 현재로서는 미국 역시 당장에 금리인하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둔화로 미국 통화정책의 추세 전환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본격적인 금리인하 시점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미국의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연준(Fed)의 FOMC정례회의는 한국시간으로 다음달 13일 예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성장률 부진 속에 가계부채 등 금융불균형이 계속 커지는 '딜레마' 상황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란 점을 고려할 때,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결국 고물가·고금리가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면서 소비·투자는 계속 부진한 양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요경제 / 박미숙 기자 toyo@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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