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줄줄이 적발…국내 정유사들은 안전한가(2부)

이덕형 기자 / 기사승인 : 2026-03-08 12: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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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원유 의존 높은데 거래는 여전히 폐쇄적…국내 적발 사례는 확인 안 돼도 투명성 검증 요구 커져

[토요경제 = 이덕형 기자] 해외 원유 트레이더들이 국영석유회사 거래를 따내기 위해 리베이트와 뇌물을 뿌린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정유사들 역시 거래 투명성 검증대에 오르고 있다. 아직 국내 업체의 직접 연루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동 편중 조달 구조와 비공개 계약 관행을 고려하면 안심을 말하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유가 급등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6일 오전 제주시 연삼로의 한 주유소 가격안내판이 휘발유 1천809원, 경유 1천855원, 등유 1천490원을 표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 원유거래 시장에서 커미션과 로비의 경계가 무너진 사례는 이미 적지 않다. 미국 법무부는 2024년 국제 원자재 트레이딩 업계의 해외부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업 6곳, 개인 20명에 대한 유죄·합의가 이뤄졌고 총 제재 규모가 17억달러를 넘었다고 밝혔다.


이 수사는 국영·국유 통제 석유회사와의 거래를 따내기 위해 뇌물이 동원된 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대표적으로 비톨, 트라피구라, 건보르, 글렌코어 등 글로벌 트레이더들은 브라질·에콰도르·멕시코 등지에서 공무원이나 국영석유회사 관계자에게 돈이 흘러간 사건으로 제재를 받거나 유죄를 인정했다.

외형상으로는 자문료, 중개료, 컨설팅비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계약 확보용 불법 대가였다는 것이 미국 수사당국의 판단이었다. 원유거래에서도 군수산업처럼 브로커, 제3자 중개인, 셸컴퍼니가 부패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국내 정유사들 리베이트 없을까?

그렇다면 국내 정유사들은 안전한가. 현재까지 이번에 확인한 공개 자료와 주요 해외 수사 발표를 기준으로 보면,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가 비톨이나 트라피구라처럼 미국 법무부의 원유거래 해외뇌물 사건에 연루됐다는 확인된 공개 사실은 찾지 못했다.

다만 이것이 곧 위험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국내의 경우 지난 2025년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서 들여왔고, 중동발 공급 차질이 커지면 국내 정유업계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구조다. 거래 규모가 크고 공급선이 제한될수록 계약 과정의 폐쇄성과 정보 비대칭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동 상황 대응책 논의를 위한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국내 정유사들이 중동산 원유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는 이미 확인된다. 로이터는 한국이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중동 의존도가 높은 국가라고 짚었고, 최근 중동 충돌 여파로 아시아 정유사들이 대체 화물을 즉시 구하지 못해 감산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국내 정유사들의 핵심 관심이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원유 조달선, 계약 안정성, 운송 리스크와 직결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래가 민감할수록, 그리고 일부 계약이 소수 공급자와 반복될수록, 시장은 자연스럽게 “그 과정은 얼마나 투명한가”를 묻게 된다.

국내 정유사들도 이런 시선을 의식해 반부패·준법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홈페이지에서 글로벌 수준의 반부패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운영한다고 밝히고 있고, 에쓰오일은 국제 준법경영 시스템 표준인 ISO 37301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고 공시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 역시 반부패경영시스템 ISO 37001을 도입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최소한 제도적 장치는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제도가 있다고 해서 의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외 사례가 보여준 핵심은 기업들이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제 거래 현장에서 제3자 수수료와 중개계약을 어떻게 통제했느냐에서 갈렸다는 점이다.

특히 원유거래처럼 가격 산정, 트레이더 개입, 장기계약, 스폿거래, 운송과 금융이 복합적으로 얽힌 시장에서는 정상 커미션과 비정상 대가를 외부에서 구분하기 쉽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는 준법 시스템이 있다”는 선언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거래를 중개했고 어떤 비용이 왜 지급됐는지 시장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단계에서 국내 정유사들을 해외 부패 사례와 같은 선상에 올려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그러나 중동산 원유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 국제 원유거래 시장에서 실제 뇌물·리베이트 적발 사례가 반복돼 온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거래 과정이 여전히 일반 투자자와 소비자에게는 불투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유사들은 정말 안전한가”라는 질문은 충분히 제기될 만하다. 안전은 적발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의심받을 여지까지 줄일 정도로 거래 구조를 투명하게 관리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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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 기자
이덕형 기자 1995년 방송사 기자로 입사한 뒤 사회부,정치부,경제부 등 주요부서를 두루 거쳤습니다. 앵커와 취재기자,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현장을 누볐고,올해로 기자 생활 31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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