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피부의 자부심으로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멘토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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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용산고 최초 다문화가정 출신 학생회장을 지낸 윌프레드 <사진=윌프레드 제공> |
음보이 하나쵸 윌프레드. 낯선 단어이다. 무슨 뜻일까. 궁금하다. 궁금할 만하다. 특별한 뜻이 없다. 사람이름이다. 음보이는 성(姓) 씨다. 윌프레드는 이름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다.
한국에서 태어났다. 피부는 갈색이다. 국적이 한국이다. 군대를 가야 한다. 군대를 빨리 가고 싶어 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순대국이다. 배추 겉절이가 있어야 밥을 먹는다. 농구를 정말 좋아한다. 아주 재미있는 청년이다. 재주가 많다. 한국의 동량이 될 재목이다.
아버지는 나이지리아 출신이다.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다. 아버지는 30여 년 전 한국에 왔다. 나이지리아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윌프레드(21)는 국민대 1학년이다.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의 명문 용산고 학생회장 출신이다. 1학년 때 전교학생회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3명이 출마했다. 투표결과 1,100명 재학생 중 800표 이상을 받았다.
2학년 학생회장 선거 때는 단독 출마를 했다. 경쟁자가 모두 출마를 포기했다. 만장일치로 학생회장이 됐다. 용산고 76년 역사에 첫 다문화가정 출신 학생회장이다. 용산고 출신 선배들이 깜짝 놀랐다.
다문화가정 출신이 용산고 학생회장이라니. 믿지 않는 선배가 많았다. 이런 분위기는 선배들 얘기다. 재학생은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될 사람이 된 거라 했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헌신과 봉사정신이 뛰어나서다. 타고난 사교성으로 모두를 즐겁게 해줬다. 용산고의 유명인사로 이름을 알렸다.
윌프레드는 4남매 중 둘째다. 아들로는 첫째다. 초등학교 3학년 까지 외국인학교를 다녔다. 아버지의 뜻이 있었다. 한국 학생에게 차별 받을까 걱정돼서다. 실제로 그랬다. 외국인학교에서는 차별이 없었다. 가정 형편상 4학년 때 한국 학교로 전학했다. 한국 학교에 가서는 놀림을 많이 받았다. 고학년이 많이 놀렸다. 왜 검둥이가 학교에 오냐고.
어린 나이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외톨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우연히 다문화 농구교실을 알았다. 주저 없이 등록했다. 친구들이 모두 반겨줬다. 농구장에 들어서니 모든 시름이 없어졌다. 타고난 운동 신경으로 농구코트를 휘젓고 다녔다.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농구의 맛에 푹 빠졌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 오산중학교로 진학했다. 이태원과 가까운 동네다. 오산중학교에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많았다. 중학교 생활은 편했다. 자신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 많은 친구가 생겼다. 한국친구들도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타고난 사교성이 큰 몫을 했다.
선생님들도 예뻐했다. 특히 2,3학년 담임선생님이 큰 도움을 줬다. 체육 선생님이었다. 윌프레드의 농구소질을 알아챘다. 실력을 키워주려 노력했다. 자신이 속한 성인 농구팀에서 훈련을 시켰다.
학교대항 농구대회에 출전했다. 월등한 실력을 뽐냈다. 상대팀 선수들이 기분 나쁘게 욕설을 했다.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나중에는 상대 선수들이 실력을 인정해 줬다. 오히려 친구가 돼줬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중3 때 전교 1등도 했다.
용산고로 진학했다. 입학 때부터 관심의 대상이 됐다. 갈색 피부와 우람한 체격(185cm)이 눈에 확 뗬다. 농구부 코치가 찾아왔다. 농구선수를 하라고 했다.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감도 심어줬다. 정말 하고 싶었다. 성공할 자신도 있었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운동으로 성공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공부해서 대학을 가라 했다. 아버지의 속뜻은 다른데 있었다. 운동 뒷바라지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방법이 없었다. 아쉽지만 포기했다. 현실적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과학중점반을 자원했다. 취업을 위한 현실적 방법이었다. 장남의 책임감이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아쉬움이 남는다. 공부와 농구 2마리 토끼를 잡고 싶었다. 농구에 대한 아쉬움은 떨칠 수 없었다. 고3 때 3대 3 농구대회에 출전해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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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x3 아마츄어농구대회에서 레이업 슛을 시도하고 있는 윌프레드 <사진=윌프레드 제공> |
국민대에 입학했다. 기계공학부로 진학했다. 장래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서다. 수시입학으로 합격했다. 대학생활도 즐겁게 하고 있다. 학교의 스타로 대접 받는다. 이유가 있다. 교내 농구동아리 대회에 출전해 우승했다. 농구대회를 자신의 독무대로 만들어 놨다. 많은 팬들이 생겼다.
윌프레드는 지금도 농구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3대 3 성인 거리 농구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공원에서 농구를 하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유튜브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윌프레드는 편견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본인의 피부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남들은 일부러 돈 들여 선텐도 하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떤다. 주변의 다문화 자녀들에게 용기도 북돋워 주고 있다. 다문화 자녀들이 차별 받고 오면 자부심을 가지라고 힘을 실어준다.
윌프레드의 막냇동생이 초등학교 5학년이다. 농구선수를 하고 있다. 따뜻한 격려로 꿈을 키워주고 있다. 열성적으로 뒷바라지를 할 각오다. 자신이 못 이룬 꿈을 동생이 대신 이뤄주길 바라고 있다.
새내기 대학생 윌프레드의 꿈은 소박하다. 부모 형제들과 순대국을 먹으며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싶어 한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복을 입고서. 평범한 회사원이 돼 3대 3 농구를 계속하고 싶어 한다.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웃음을 주는 희망의 멘토가 되고자 한다.
갈색피부의 윌프레드. 순대국과 겉절이를 좋아하는 윌프레드. 구김살 없는 모습의 윌프레드. 120% 완전 토속 한국인 윌프레드의 넓은 어깨에서 다문화가정의 힘을 느끼게 된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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