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함께 하는 윤창기 화가…'울림' 줄 수 있는 작품 남기고 싶어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3-07-17 09: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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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창기 화가의 매니큐어를 활용한 작품<사진=윤창기 화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는 윤창기(63) 화가. 윤창기의 작품세계는 그의 삶과 궤적을 같이 한다.

윤창기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미술을 시작할 때 특별한 동기가 없었다. 유년기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화가였다.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은 언제나 화가로 적혀있었다. 그냥 그렇게 미술에 빠져 들었다.

화가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윤창기의 고향은 충북 강평이다. 작은 시골마을이다. 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엄한 부친의 반대가 심했다.

윤창기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고향을 떠났다. 무작정 탈출했다. 서울의 삶은 녹녹치 않았다. 끼니를 때우는 게 우선이었다. 그림보다는 배를 채우기 바빴다. 쌀 한 톨이 소중했다. 직장생활을 했다. 단체생활에 적응이 안 됐다. 곧 퇴사했다. 막노동을 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다.

팍팍한 서울생활에 안식처가 필요했다. 29살에 피앙세를 만났다.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다시 붓을 들었다. 부인이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다. 부인의 내조가 힘이 됐다.

정통으로 미술을 배우고 싶었다. 2002년 미대에 입학했다. 40이 넘은 나이였다. 미술에 대한 갈증이 풀어졌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 추계예술대 전체수석 졸업의 영광을 누렸다.

윤창기의 인생관이 특이하다. 젊었을 때는 예술지상주의였다. 그림만 있으면 산다는 생각이었다. 현실과 떨어진 삶을 살았다. 지금은 아니다.

결혼 후 생각이 바뀌었다. 예술보다는 삶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가장의 책임을 지려 한다. 주변과의 교류를 중요시 하고 있다.

윤창기는 6번의 아트페어를 했다. 작가가 상인이 돼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관람객을 잡고 작품설명을 해야 했다. 유창한 말로 관람객을 사로잡아야 했다. 설명을 잘 하면 작품이 판매됐다. 쉽지 않았다. 예술인의 사업능력이 떨어짐을 느꼈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화가들의 경쟁심이 생겼다. 자신의 작품에 매진하게 됐다.

윤창기의 작품관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모했다. 젊었을 때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이제는 바뀌었다. 조용함 보다는 생동감을 추구하고 있다.
자연 속에 있는 생명력을 묘사하려 한다. 생명력은 작가의 내재돼 있는 욕구표현이라 생각한다.

요즘의 미술은 영역파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예술의 독창성이 중요시 되고 있다. 자기만의 독창적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물감 대신 매니큐어. 붓 대신 나무젓가락, 손 등 재료의 차별화를 가져오고 있다.

윤창기도 새로운 조류에 일찍 적응했다. 흙과 매니큐어를 활용한 작품 활동에 적극적이다. 이미 훌륭한 작품을 여러 점 선보였다. 

▲ 흙과 유화를 혼합해 그린 작품 <사진=윤창기 화가>

 

윤창기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음악과 미술을 조화시키는 장르에 도전했다. 아름다운 소리와 미술적 표현의 조화에 힘을 쏟고 있다. 자신만의 독창성에 노력하고 있다.

윤창기는 작업을 할 때 음악을 틀어 놓고 한다. 음악 유무에 따라 작품활동의 흥이 차이가 난다. 윤창기만의 느낌일 수도 있다.

윤창기는 수많은 수상을 했다. 심사위원도 역임했다. 이제는 한 가지 목표만 갖고 있다. 가슴에 울림을 주는 한 점만 그렸으면 한다. 

 

윤창기는 오는 8월25~30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장소는 혜화 아트센터다.

*아트페어*: 여러 화랑이 같은 곳에 모여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시장

 

토요경제 /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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