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물러나는 수장, 밀려나는 수장
[기자수첩] 물러나는 수장, 밀려나는 수장
  • 김자혜 기자
  • 승인 2019.04.05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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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김자혜 기자] 1950년대 미국의 버지니아주에 살던 에릭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대학에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도 딴 에릭은, 연구소를 시작으로 프로그래밍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1983년 한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관리자 된 그는 몸담은 회사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성장하며 승승장구 했다. 그러던 2001년 그에게 두 명의 젊은 청년이 찾아온다. 에릭은 규모는 작지만 열정과 통찰을 가진 청년들의 제안을 받고 그 회사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에릭이 들어간 작은 벤처회사는 구글(google)이다. 그리고 눈치를 챈 이도 있겠으나 앞서 이야기 해온 에릭은 17년간 구글 성장의 핵심적 인물 에릭슈미트 알파벳 전 회장이다.

업계에서 구글의 에릭슈미트의 영입은 ‘신의 한수’로 손꼽힌다. 그가 구글로 들어가 이후 적자는 흑자 전환되고 IT업계 거대공룡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모회사 알파벳의 매출은 2016년 기준 95조를 돌파했다.

IT계 역사를 써온 에릭슈미트 회장은 지난해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회장을 끝으로 구글 생활 17년을 접었다. 에릭슈미트 전 회장은 “사회공헌과 기부활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고 말하며 박수칠 때 떠났다.

최근 한국에서도 직접 일군 기업을 스스로 물러난 이가 있다.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엔비의 권원강 회장이다. 권 전 회장은 지난달 중순께 경영퇴임을 공식 선언했다. 신임대표 황학수 총괄사장을 선임해 교촌에프엔비는 29년 만에 CEO체제로 체질을 바꿨다.

권원강 전 회장은 늦은 나이 자수성가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해외건설노동자, 택시운전, 노점상등 여러 직업을 거치다 40세에 경북 구미에서 교촌통닭을 시작으로 치킨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30여년 만에 교촌치킨은 치킨가맹점 평균 매출액 순위 1위의 기업으로 지난해 기준 1037개의 매장에 평균매출액 5억6827만원을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 권 전 회장의 6촌이 지난 2015년 폭행한 사실이 밝혀지며 자수성가 신화는 얼룩지고, 결국 올해 사퇴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에릭슈미트 전회장과 권원강 전 회장은 소위 말하는 밑바닥부터 실무를 밟아 올라간 이들의 '자발적 퇴임'이라는 점에서 만큼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수년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결국 자리에서 밀려나가 버린 회장도 있다. 바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다. 조 회장은 지난달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대표이사에서 쫓겨나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난 국내 첫 사례를 썼다.

조회장은 앞서 거론된 전 회장들과 걸어온 길이 꽤 다르다. 선친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이 인수한 대한항공에 입사해, 18년간 근무하다 1999년 사장에 올랐다.

이후 대한항공의 안전성을 높였다는 평가도 받지만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을 시작으로 오너일가의 갑질 논란이 크게 불거졌다. 이후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행 문제가 줄줄이 이어지며 결국 5년여 만에 기업에서 쫓겨나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조양호 회장의 오너일가 문제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장남 조원태 사장은 아직 대한항공의 사내이사 임기를 2021년까지 앞두고 있다. 가족들이 쓴 흑역사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조 사장의 손에 달려있다. 물러나는 수장이 될 지 밀려나는 수장이 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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