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 시장에 ‘성(性)역할 깨기' 바람이 분다
[기자수첩] 소비 시장에 ‘성(性)역할 깨기' 바람이 분다
  • 김자혜 기자
  • 승인 2018.10.29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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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김자혜 기자] “밥을 잘해주는 엄마보다 이제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가 시장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근 '트렌드코리아 2019' 책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김난도 교수는 이같이 전망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 역할이, 가정과 자기관리를 동시에 수행하는 역할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정간편식의 주 소비층으로 이동하고 있기도 하다.

엄마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지만, 최근 젊은 여성의 역할도 변화하는 사례가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 1984년에 출시한 초콜렛 ‘크런키’ 모델로 첫 여성광고 모델 화사를 발탁했다. 그동안 초콜렛에 바삭한 과자를 품고 있던 크런키는 홍보에 ‘당당함’ ‘고정관념을 깨는’ 등 강인한 이미지를 앞세워 왔다. 이에 따라 남성모델을 위주로 발탁해 왔는데 34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모델을 기용한 것이다.

유통업계는 아니지만, 현대캐피탈이 최근 송출하고 있는 ‘놓치고 살기엔 아까운 혜택’ 광고에는 숨은 '역할깨기' 사례가 나온다.

광고영상에는 자동차 운전대에 1인칭시점으로 앉은 사람이 등장한다. 손과 운전대, 자동차 앞유리 밖으로 보이는 풍경만 나오는 것이다. 광고는 주인공이 자동차 관련 서류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동안 시야에 펼쳐지는 '집', '가족사진', '자전거', '자동차 내 룸미러'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서류를 넘기는 동안 위의 네가지는 달라져 있다.  영상을 보는 이에게 “바뀐 것 보셨어요?”라는 나레이션을 내보낸다. 고민하는 사이 집이 증축되고 자전거는 유모차로, 가족사진의 커플은 아이가 새로 생겼으며 룸미러에는 카네이션도 붙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광고에서 언급하지도 티내지도 않는 것이 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인식을 가진 필자는 운전석에 앉는 얼굴없는 이가 당연히 남자라고 여기고 광고를 봤지만, 자세히 보니 이 광고에서 주인공은 여자다.

가족사진의 남성과 어린아이가 자동차로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정된 성역할은 광고에서도 ‘티 내지 않고’ 은은한 솔바람 처럼 변화를 주고 있다.

여성의 역할과 영역도 바뀌지만, 남성의 역할과 영역도 바뀌고 있다. 명품 브랜드 샤넬에서는 남성용 메이크업 브랜드를 론칭했고 봐도 성역할은 상호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성역할을 깨는 시도들은 과거의 고전적인 역할을 떠나,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을 사람이라는 관점에서는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다. 그리고 점차 자신다움을 찾는 '주체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이들이 많아지므로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과연 기존의 역할 깨기로 인해 나의 '주체성'을 찾는 소비가 정말 온전히 나의 생각과 나의 기준에서 시작 된 것인지 한번 짚어볼 필요는 있다. 기업들은 기존의 포화된 소비시장을 떠나 새로운 먹거리 찾기를 위해 기꺼이 '인도주의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영리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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