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이 뭐길래③] 업무상에 일어난 과로사...“산재보험 인정은 하늘의 별따기”
[은행원이 뭐길래③] 업무상에 일어난 과로사...“산재보험 인정은 하늘의 별따기”
  • 문혜원 기자
  • 승인 2018.10.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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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입증책임의 어려움 잇따라.. 노동계, 객관적 과로자살 법적 인정기준 마련해야

 

은행원들의 감정적 노동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와 업무과다 등으로 인해 과로사로 쓰러져 가고 있는 가운데 업무재해상 산재보험을 인정받기가 어려워 논란이다<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은행권이 이달부터 ‘주52시간 단축 조기시행’ 본격화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일선 현장직원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지나친 격무 탓에 과로사·질병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은행원들의 이 같은 호소에 일반인들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배부른 소리를 한다’며 비판의 눈초리도 있기 때문. 하지만 최근 은행원들의 과로사 자살이 잇따르면서 과로자살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업무상에 일어난 과로사는 산재보험으로 인정받기가 매우 까다로운 편이어서 객관적 인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산재보험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와 향후 법적인 대책은 없는 지 알아봤다-[편집자 주]

[토요경제=문혜원 기자] 8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은행원들의 과로사 산재 인정의 어려움은 오늘날 새삼스러운 풍경은 아니라는 것이 현장직원들의 중론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근로자의 노동시간이나 환경 등을 기록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객관적 지표를 판단할 서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 한 은행원의 사례로 살펴보자. 시중은행 중 A은행의 김 지점장(58세)은 출장도중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진 후 현재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씨는 25년차 영업지점에서 근무했다. 그의 기본업무는 여신·대출금 관리였다.

그는 기본업무 외 외부 영업미팅, 주말 동호회 활동, 다양한 상품 판매 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것이 주변 가족 또는 지인들의 진술이 있었다. 그의 가족은 쓰러진 김 씨를 대신해 산재신청보상 대행 전문 한 노무사에 방문했다.

담당 노무사는 상담 신청을 접수한 후 가족들의 진술, 동료직원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후 과로사로 쓰러졌다는 입증할 만한 서류를 받기 위해 해당은행지점에 방문해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쉽게 사실 확인 자료에 입각한 출퇴근 기록 등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노무사와 유족들은 사업자에게 끈질긴 설득 끝에 각종 자료를 입수한 서류들을 챙겼고, 근로복지공단 지사에 접수를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접수한 내용을 산하 질병판정위원회에 의뢰했다. 이 기관은 업무상 발생되는 재해인지 판별여부를 몇 개월 동안 걸쳐 심사를 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심사 결과, 김 씨는 재해발병 당시 과도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주말 특근 등으로 인한 만성적 과로가 인정되지 못했다. 이유는 저녁시간 업무에 대한 인정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이었다.

A씨 가족은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 재판결과에서는 업무일과가 보통 오후 8시 전에는 퇴근할 수 있는데 저녁시간에 만약 일을 했다면, 개인적 판단이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현재까지 재판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유족들은 ‘지친다’고 하소연 했다.

위 사연을 담당한 배연직 토마토법인 노무사는 “‘입증책임’이라는 것은 자살 동기나 사건의 경위를 알고 있는 유일한 당사자 또는 가족들이 무조건 합당한 근거들을 찾아 서류로 제출해야 하는 것들인데, 문제는 사실관계에 있어서 사측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면, 물거품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입증책임’의 어려움은 인해 실제 근로복지공단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에 자료를 요청해 확인한 결과, 은행권 종사자 산재신청 수는 낮았다.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6개 시중은행(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 등)의 유족급여 신청 31건 가운데 11건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여기서 뇌심혈관계 질병으로 인한 사망에 대한 산재 승인율은 23.8%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노동시간이 입증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산재는 4건 가운데 3건이 승인받아 승인율은 75%였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법상 업무재해 규정을 보면, 규정상 뇌혈관 질환과 업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위해서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일 평균 60시간 이상 근로, 4주 동안 1주일 평균 64시간 이상 일했다는 입증이 돼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근로기준법상 1주당 법정근로시간 연장 한도인 12시간을 합하고도 8시간 이상을 더 일했어야만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근로자가 사망했을 경우 유족들이 휴대전화나 출퇴근 교통 기록 등을 통해 과로사의 근거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입증책임’은 업무로 인한 과로사로 인정되느냐 안되느냐의 판단이 설 수 있는 증거서류를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업무상질병 입증책임을 근로자나 그 유족이 지도록 한 산재보험법 37조1항2호가 위헌이 아니다로 명시돼 있다(헌재 2015. 6. 25. 선고 2014헌바269 결정).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시초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안전보건 10개 조항이다. 63년 산재보험법이 먼저 제정됐고, 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독립해 별도 법령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많이 바뀌었지만 과로사나 정신건강·보건관리·노동자 참여 등 안전보건 과제가 빠져 있다는 것이 노무사들의 의견이다. 이에 입증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개선이 필요하다는 노동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관계자는 “법에서는 입증책임을 사건 당사자의 가족(피재자)에게 지우고 있다”며 “실질적인 ‘평등관계’를 성립하기 위해서는 산재 사건에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란, 자살자 주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후향적으로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북미 법정에선 1980년대부터 이를 이용한 바 있다. 노동계에서는 향후 의학적 규명과 규범적 판단이 혼재해 있는 업무상자살이 산재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근로자들의 과로사 현장조사를 의무화하고 노동시간 입증을 국가 책임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무엇보다 은행원들의 특성상 저녁접대업무·주말 근로 등 불가피한 일이 연속됨에 따라 근무시간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기덕 새날 노무법인 변호사는 “산재보험 인정 관련 명확히 법제화 하려면 특정사안의 경우(업무상 발생되는) 다양한 유형을 모은 객관적 지표를 만든 ‘메뉴얼’(가이드라인)을 구성 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이 매뉴얼은 연장근로에 대한 표준 징표가 마련되면 업무상재해 발생시 산재 기준도 설정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현 근로기준법 상 ‘사업장 밖 근로시간제’와 같은 기준의 제도”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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