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 이야기] <32> 여기자와 함께 출장
[촌지 이야기] <32> 여기자와 함께 출장
  • 김영인
  • 승인 2018.07.12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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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갈 때도 여기자는 껄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여기자에게는 숙소부터 신경을 써줘야 했다. 호텔 객실을 특별하게 고려해서 배정해줘야 했다.
술을 마시러 갈 때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 기자들이 ‘파트너’를 부른다고, 여기자에게 ‘남자 파트너’를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서 “남자 기자들이 취재는 제쳐놓고 파트너나 불러서 엉뚱한 짓을 하고 놀았다”고 폭로(?)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럴 경우를 감안해서 아예 ‘파트너’ 없이 술을 마셔야 하지만, 그러면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의 출장 의미(?)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기레기의 기자실에도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여기자가 있었다. 귀엽고 예쁜 신출내기 여기자였다. ‘홍일점’이었다.

지방출장을 앞두고 기자실 간사가 그 여기자를 조용히 불렀다. ‘1박2일’ 일정으로 지방출장을 떠나는데, 가급적이면 동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타이르기 위한 것이었다.

출장을 가면, 함께 고스톱을 하고, 폭탄주를 여러 잔 마셔야 하는 데다, 남자 기자들 틈에서 새우잠을 자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겁’을 잔뜩 줬다. 남자 기자들이 ‘파트너’와 노닥거리는 꼴사나운 구경도 하게 될 것이라며 출장을 포기하라고 말렸다.

그렇지만, 여기자의 대답은 단호했다.
“선배, 그래도 따라가고 싶어요.”

별 수 없었다. 그 대신 ‘저녁 일정’을 조금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저녁을 먹으며 소주를 몇 잔씩 걸친 뒤에, 술은 장소를 옮겨서 본격적으로 마시기로 했다.

고맙게도 여기자는 ‘기자다운’ 센스를 발휘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더니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자리를 눈치껏 피해준 것이다. 덕분에 남자 기자들끼리 ‘2차’로 방석집에서 노닥거릴 수 있었다.

간사는 여기자의 객실을 맨 가운데에 있는 방으로 정해줬다. 만약의 경우, 소리라도 지르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아무리 비명을 지른다고 해도 ‘꼭지’가 돌도록 마신 남자 기자들 귀에 소리가 들리기는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여기자에게는 그만큼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해외출장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을 ‘취재’했을 때였다. 일행 가운데 여기자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무관의 제왕’뿐 아니라 ‘무관의 여왕’도 있었던 것이다.

낮 시간에는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럭저럭 무난했다. 남자 기자들끼리 몰려다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같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관광을 하고, ‘취재’도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저녁때가 되면서 좀 곤란해졌다. 여기자와 함께 있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여기자와 함께 있으면 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가라오케’를 가기로 일정을 잡고 있었다. 폭탄주를 마시고 ‘파트너’를 불러서 떠들썩하게 놀아볼 판이었다. 그러나 그곳까지 여기자를 데리고 가기는 곤란했다. 그렇다고 떼어놓고 갈 수도 없었다. 차별대우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기레기 일행을 초청한 ‘주최측’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주최측 직원이 여기자를 따로 안내하기로 한 것이다. 주최측 직원은 분위기 조용한 곳에서 여기자와 함께 포도주를 마셔줘야 했다. 여기자를 상대하는 노하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주최측 직원은 졸지에 여기자를 위한 ‘기쁨조’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기레기 일행 가운데 간사도 별 수 없이 여기자와 동행했다. 포도주를 마시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불평을 재워줘야 했다. 간사는 여기자를 매끄럽게 숙소로 돌려보내고 나서야 가라오케로 합류할 수 있었다.

기자실 간사라는 감투(?)는 기자들 ‘복지’ 챙기고, 여기자 ‘접대’하고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았다. 남자 기자들은 자신들을 ‘감시’할 수도 있는 여기자를 그렇게 떼어버릴 수 있었다.

기자들이 사용하는 일본식 용어 중에 ‘가라마와리’라는 말이 있다. 출입처를 돌아다니면서 취재하는 게 ‘마와리’라면, ‘가라마와리’는 그 ‘마와리’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여기자는 남자 기자들에게 일종의 ‘가라마와리’를 당한 셈이 되고 있었다.


<이 글은 도서출판 지식공방에서 펴낸 저서 ‘촌지’를 약간 수정, 보완해서 재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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