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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칼럼] 죽음과 싸우는 아이
  • 이정선 기자
  • 승인 2018.07.06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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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귀양살이’를 했던 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 오세암(五歲庵)이라는 암자가 있다. 원래는 ‘관음암(觀音庵)’이었는데 나중에 ‘오세암’으로 바뀌었다는 암자다.

조선 인조 임금 때, 이 암자에서 설정(雪淨) 대사가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된 조카를 맡아서 키우고 있었다. 설정 대사는 어느 해 초겨울, 월동 준비를 하러 산을 내려가면서 조카가 며칠 동안 먹을 수 있을 밥을 지어놓고 말했다.

“이 밥을 먹으면서 저기 있는 어머니(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불러라. 그러면 어머니가 너를 보살펴줄 거야.”

그렇지만 설정 대사는 돌아올 수 없었다. 폭설이 사람 키만큼 ‘엄청’ 내리는 바람에 발이 묶인 것이다. 이듬해 3월에야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조카는 겨우 네 살이었다. 조카는 그 사이에 굶어죽었을 게 틀림없었다.

대사는 조카의 시신이라도 수습할 생각이었는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울리고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이미 죽었을 것으로 알았던 조카가 목탁을 두드리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조카는 대사가 들어서자 보살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엄마가 나한테 밥 주면서 같이 놀아줬어.”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조카는 무려 3개월 이상을 먹지 못했을 텐데도 살아 있었던 것이다. 설정 대사는 합장을 하고, 또 합장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조카는 나이가 한 살 더 들어서 다섯 살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암자의 이름을 다섯 살을 의미하는 ‘오세암’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다.

‘시무 28조’로 유명한 고려 때 학자 최승로(崔承老)의 기적도 있다.

최승로는 신라 말,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났다. 태어난 지 3개월이 못되었을 때 견훤(甄萱)의 후백제 군사가 경주로 쳐들어왔다. 최승로의 아버지 최은함(崔殷含)은 어린 최승로를 중생사(衆生寺)의 보살상 밑에 숨겨두고 자신도 몸을 피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최승로를 곧바로 찾으러 갈 수 없었다. 후백제 군사들이 물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름이나 지나서야 최승로를 숨겨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보름 동안 굶은 아기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아마도 희박했다. 그런데도 최승로는 멀쩡했다. 오히려 살결이 고와졌고 입에는 여전히 젖 냄새가 남아 있었다고 했다.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머나먼 태국에서는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에 열흘 동안 갇혔던 아이들의 생존 소식이 들리고 있다. 유소년 축구선수 12명과 코치 등 13명의 생존 소식이다.

아이들은 지난달 23일 훈련을 마치고 치앙라이주의 ‘탐 루엉 낭 논’이라는 동굴을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연락이 끊어졌다고 했다. 동굴에 들어간 사이에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굶은 탓인지 다소 말라 보였고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구조대에게 ‘땡큐’를 외치고 있었다.

아이들도 이렇게 죽음과의 싸움을 극복하고 있다. 그런데 ‘난민 아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있다. 불과 며칠 전에도 리비아 해안에서 난민 여자아이로 보이는 시신 3구가 발견되고 있다. 난민은 우리나라의 제주도에도 도착하고 있다.

이정선 기자  jslee@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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