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칼럼] 수박 이야기
[마포 칼럼] 수박 이야기
  • 이정선 기자
  • 승인 2018.06.2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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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몽골 군대는 쳐들어가는 곳마다 6가지 ‘항복조건’을 강요했다. 이른바 ‘몽골 6사(六事)’다.

① 인질을 바칠 것 ② 군사를 내서 몽골을 도울 것 ③ 식량을 제공하고, 운반할 것 ④ 역참을 설치하고, 교통편의를 제공할 것 ⑤ 호구를 조사해 보고할 것 ⑥ 총독인 ‘다루가치’를 둘 것 등이었다.

이 ‘6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하면 글자 그대로 ‘싹쓸이’를 당해야 했다. 몽골 군대는 세계 곳곳을 폐허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려는 굴복하지 않았다. 유명한 귀주성 싸움에서 김경손(金慶孫) 장군은 날아온 화살이 팔뚝에 꼽혔다. 그래도 쥐고 있던 북채를 놓치지 않고 북을 울렸다. 처인성 싸움에서 김윤후(金允侯) 장군은 적장 살리타이를 화살 한 대로 끝내버렸다. 지휘관을 잃은 몽골군은 황급하게 철수해야 했다. 고려는 이렇게 나라를 지켰다.

그런 와중에, 혼자 살아보겠다는 배신자도 있었다. 대표적인 배신자가 홍다구(洪茶丘) 일가, ‘패밀리’였다.

홍다구의 할아버지 홍대순(洪大純)은 몽골과 싸움이 일어나기도 전에 일찌감치 항복했다. 홍다구의 아버지 홍복원(洪福源)은 살리타이가 쳐들어왔을 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몽골의 앞잡이 노릇을 자청했다. 홍다구는 아예 몽골에 귀화해서 몽골군에 입대했다. ‘대를 이은 배신’이었다.

홍다구는 삼별초의 항쟁까지 억눌렀다. 삼별초가 내세운 승화후 온(溫)과 아들 환(桓)을 죽이고 출세한 것이다. 그러면서 몽골에 잘 보이기 위해 백성을 괴롭혔다. 덕분에 떵떵거리고 살았다. ‘이완용의 대선배’쯤 되었다.

그런데, 이 홍다구가 어느 날 처음 보는 과일을 수도인 개경에서 재배하고 있었다. ‘수박’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수박은 ‘배신자가 들여온 과일’이었던 것이다.

수박은 달콤하고 시원했다. 냉장고라는 게 없던 당시였다. 냇물이나 우물 속에 넣었다가 꺼내 먹으면 더위를 잊을 수 있도록 해주는 과일이었다.

이 기막힌 수박은 곧바로 온 나라에 유행할 만했다. 하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세계 최강’인 몽골과 장장 30년이나 맞서서 싸운 고려였다. 배신자가 가져온 과일을 좋아할 리 없었다.

뜻 있는 사람들은 수박을 더욱 외면했다. 그 바람에 수박은 도입 당시에는 별로 보급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과거사’가 있던 수박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먹기 껄끄러운 과일로 변하고 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수박 반쪽 또는 반의 반쪽을 비닐 랩으로 포장한 ‘미니 수박’이 상술로 등장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그 ‘미니 수박’을 잘게 잘라서 조금만 먹고 나머지를 냉장고에 넣어 아끼고 있다.

아끼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 할 경우 세균에 오염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민들은 한여름에 수박 맛 좀 보기가 이래저래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덜 먹을 일이다. 시원한 수박 생각이 날 때 ‘홍다구 과일’을 떠올리며 한두 번 건너뛰는 것이다.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든 연산군이 ‘수박화채’를 무척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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