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마포칼럼
[마포 칼럼] ‘오수부동’ 개성공단
  • 이정선 기자
  • 승인 2018.06.22 06:06
  • 댓글 0
   
 

[토요경제=이정선 기자] 고려 왕궁이었던 개성 만월대는 지세가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이라고 했다.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가는 형상이다.

따라서 만월대는 부귀하고, 안락하며, 자손이 번성할 명당이다. 고려는 천하의 명당에 왕궁 터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만월대의 동남쪽에 있는 자남산(子南山)이 문제였다. 자남산의 ‘자’는 간지(干支)로 쥐를 의미했다. 그러니 자남산은 늙은 쥐의 새끼 쥐 형상이었다. 만일 자남산의 새끼 쥐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어디론가 옮겨갈 경우, 늙은 쥐도 새끼 쥐 걱정 때문에 뒤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늙은 쥐가 움직이면 왕궁이 불안해질 우려가 있었다. 왕궁이 안정되려면 늙은 쥐를 움직이도록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끼 쥐부터 붙들어놓아야 했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오수부동(五獸不動)’이었다. 자남산의 쥐가 꼼짝 못하도록 그 산을 중심으로 고양이와 개, 호랑이, 코끼리의 형상을 빙 둘러서 배치한 것이다.

이렇게 배치해놓으니까 새끼 쥐는 고양이가 무서워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또 고양이는 개가 노리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개는 호랑이가 노리고, 호랑이는 코끼리가 노려서 역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코끼리는 쥐에게 제압당하는 바람에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다섯 짐승이 모두 움직이지 못하는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오수부동’을 통해 자남산의 새끼 쥐는 제자리에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고, 만월대의 늙은 쥐 역시 움직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고려 왕조는 이 ‘오수부동’의 지세를 갖춰놓은 덕분에 몽골의 침입 등 끊임없는 국난을 겪으면서도 50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만월대는 폐허가 되었고, 자남산 주변에 세워놓았던 짐승의 형상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개성 시내에는 묘정(고양이), 구암(개), 호천(호랑이), 상암(코끼리)이라는 지명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자남산 기슭에 있는 ‘자남산 여관’에서는 남과 북이 여러 차례 회담도 가졌다. 다섯 짐승인 ‘오수’의 흔적만큼은 여전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런 ‘오수부동’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 사이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별로 이루어지지 못해 왔다. ‘개성공단’을 보면 그렇다.

북쪽에서 개성공단의 계약 무효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싫으면 나가라”고까지 한 적 있었다. 남쪽의 현대아산 직원을 ‘멋대로’ 억류하기도 했다.

‘오수부동의 땅’인 개성에서조차 ‘오수부동’이 일방적으로 깨진 것이다. 어쩌면 공단의 위치가 개성 시내와 떨어져 있어서 ‘오수부동’의 영향이 별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개성공단을 남쪽 관계자들이 다시 찾았다는 소식이다. ‘재가동’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재벌 개혁과 관련, 좀 어려운 표현을 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적어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비가역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었다.

‘비가역적(非可逆的)’은 김 위원장의 말처럼, 되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만큼은 ‘오수부동’이 제대로 이루어져서 개성공단 재가동이 ‘비가역적’이었으면 싶은 것이다.

이정선 기자  jslee@sateconomy.co.kr

<저작권자 © 토요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기획·분석기사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