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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 이야기] <25> 누드쇼 구경하는 취재
  • 김영인
  • 승인 2018.06.19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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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미(付驥尾)’라는 말이 있다. 천리마 꼬리에 붙는다는 얘기다.

파리는 기껏 날아봐야 10보(步) 거리가 고작이다. 손톱보다도 작은 파리가 그 이상 먼 거리를 날아가려면 벅찰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천리마처럼 빠른 말의 꼬리에 붙어 있으면, 1000리 길도 쉽게 갈 수 있는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큰 사람 주변에 붙어 있으면 따라서 클 수 있다. 또는, 크는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신분이 상승할 수 있고, 이름을 떨칠 수도 있다. 부(富)를 어느 정도 챙길 수도 있고, 그래서 세력을 과시할 수 있다.

기레기는 어느 날 갑자기 이 ‘부기미’가 되고 있었다. ‘장관’이라는 ‘천리마’에 따라붙은 ‘파리’가 된 것이다. 장관과 함께 태평양을 건널 수 있었고, ‘칙사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초초특급’ 호텔에서 새우잠도 잘 수 있었다. 장관을 따라오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장관의 ‘부기미’가 되면서 대단한 출세(?)를 한 것이다.

뉴욕에서 수두룩하게 ‘증명사진’을 찍은 기레기는 장관과 함께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공식적인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까지는 신나게 놀았지만, 공식 일정이 시작되면 좀 달라져야 했다. 우선, 신문사로 기사 몇 줄 정도는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까짓 기사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장관을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알아서 제공할 것이었다. 기사를 영어로 쓰는 것도 아니었다. 공무원들이 말해주는 내용을 ‘기사 스타일’로 고쳐서 신문사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한두 번 해본 놀음이 아니었다.

그래도 기레기는 나름대로 ‘한미 현안’에 관한 자료도 챙겨놓고, 기사를 구상하기도 했었다. 장관 덕분에 호강하는데 기사라도 충실하게 써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관에게 다른 방법으로 보답할 길은 없는 것이다. ‘무관의 제왕’이 ‘대한민국 장관’에게 술을 대접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지만 막상 워싱턴에 도착하고 보니 할 일이 없었다. ‘한미 현안’을 따지는 회의장을 갈 필요도 없었다. ‘부기미’ 노릇은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완벽하게 하고 있었다. 기레기는 ‘열외’였다. 그러니 할 일은 또 뻔했다. 노는 것뿐이었다.

기레기와 동료 기자는 워싱턴 현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여기저기 끌려 다녔다. ‘증명사진’을 찍었다. 낮 시간을 증명사진 찍는 것으로 보냈다. 그리고 날이 저물 무렵 호텔로 돌아왔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워터게이트 호텔’이었다. 장관의 ‘부기미’쯤 되면 이 정도 수준의 호텔에서는 묵어야 좋았다.

호텔에서부터는 또 다른 공무원이 기레기와 동료 기자를 끌고 갔다. 말하자면 ‘임무교대’였다. 역시 현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그 공무원은 기레기에게 뜻밖에도 ‘1달러짜리’ 지폐를 한 주먹이나 꺼내줬다. 잔돈이 많이 필요할 테니 챙겨두라고 했다.

그 ‘1달러짜리’를 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따라간 곳은 희한했다. 나체에 가까운 젊은 ‘외국’ 여성이 술좌석 사이에서 몸을 비비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그 여성을 들여다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공무원은 자주 해본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춤을 추는 ‘외국’ 여성이 가까이 접근하자 ‘1달러짜리’를 돌돌 말아서 여성의 은밀한 부분에 찔러주고 있었다. ‘외국’ 여성은 돈을 찔러준 공무원 앞에서 묘한 포즈를 취하며 춤을 잠깐 동안 계속하고 있었다. ‘외국’ 여성의 몸에는 ‘1달러짜리’ 돈이 곳곳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런 짓이라면 빠지지 않을 기레기였다.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할 기자였다. 곧바로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한 주먹이나 되던 돈을 모조리 찔러주며 입을 귀밑까지 찢고 있었다. 잔돈이 떨어지자 공무원에게 더 내놓으라고 ‘슈킹’까지 해서 찔러주고 있었다.

‘1달러’가 아닌, ‘100달러짜리’ 돈에 호텔 객실 번호를 적어서 찔러주면 혹시 나중에 찾아오지 않을까 물어보며 킬킬거리기도 했다. 장관을 따라와서 별 신기한 구경을 다 해본 것이다. 기레기의 ‘한미 현안’ 취재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날마다 구경이고, 날마다 유흥이었다.

 

<이 글은 도서출판 지식공방에서 펴낸 저서 '촌지'를 약간 수정, 보완해서 재록하는 것입니다>

 

김영인  belly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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