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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 이야기] <22> 고액의 ‘팁’도 카드로 결제
  • 김영인
  • 승인 2018.06.05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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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일행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돈을 제법 잃었다. 모두들 ‘신나게’ 잃었다. 지갑들이 얇아졌다. 그런데도 희희낙락이었다. 돈 잃었다고 풀이 죽은 기자는 없었다. 도대체 뭐가 좋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 돈을 읽은 게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자들은 돈을 잃고도 깔깔거리는 ‘이해하기 껄끄러운 인종’이었다. 하기는 조금 얇아진 지갑 따위는 조만간 두툼하게 채워질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 것을 믿고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자들만 그랬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기 전, 기레기 일행은 끗발 높은 어떤 ‘고위 공직자’의 식사 초대를 받았다. 한국에서 날아온 기자단에게 한 끼를 대접하겠다는 ‘정중한 초대’였다.

공짜 음식을 거절할 기자들이 아니었다. 좋다고 달려갔다. 장소는 한국식당이었다. 그것도 ‘고급’ 한국식당이었다. 소갈비가 나오고, 등심이 나오고, 생선조림이 나오고, 파전이 나오고, 김치와 깍두기도 나왔다. 미국 현지에서는 ‘값비싼 수입 소주’까지 나왔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국음식이었다. 그것도 진수성찬이었다. 김치, 깍두기, 소주가 무엇보다 반가웠다. 기레기 일행은 허겁지겁 먹고 마셨다. 먹을 만큼 먹고, 과일과 커피까지 해치웠다.

계산할 차례가 되었다. 고위 공직자는 점잖게 계산서를 요구했다. 계산서를 가지고 온 사람은 ‘한국 아줌마’였다. 한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국 아줌마 같았다.

고위 공직자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에 신용카드가 여러 장 들어 있었다. 고위 공직자는 그 가운데 한 장을 끄집어냈다. VIP 카드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 ‘완만하고 느긋한 행동’은 아주 돋보였다. 기자들에게도 느껴지고 있었다. 고위 공직자는 그리고는 한국 아줌마에게 볼펜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고위 공직자는 볼펜을 들더니 계산서에 몇 글자를 적어 넣었다. 물론 영어였다. 미국까지 와서 한글을 쓸 까닭은 없었다. 그 동작 역시 익숙해 보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시쳇말로 ‘숙달된 조교’의 솜씨였다.

고위 공직자는 그러면서 신용카드와 함께 넘겨줬다. 마침 바로 옆에 앉았던 기레기의 동료 기자가 그 계산서를 슬쩍 넘겨다보았다. ‘플러스 서비스 차지(Plus Service Charge) 몇 달러’라고 적혀 있었다.

동료 기자는 기자답지 못하게 둔감했다. ‘서비스 차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머리에 곧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 아줌마의 태도를 보고 나서야 겨우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한국 아줌마는 가장 공손한 자세로 고위 공직자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허리가 정도 이상으로 굽혀진 절이었다. 방석이 깔려 있었다면 큰절이라도 했을 것 같았다.

‘서비스 차지’는 글자 그대로 ‘봉사료’였다. 다름 아닌 ‘팁’이었다. 고위 공직자는 음식값은 물론, 팁까지 신용카드에 얹어서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팁의 규모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한국 아줌마가 허리를 깊숙하게 굽힐 정도로 많은 팁이었다. 고위 공직자는 ‘폼’을 있는 대로 다 잡으며 넉넉한 팁을 주었고, 한국 아줌마는 고마운 나머지 입을 귀밑까지 찢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경상수지가 만성적인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기자들은 한 푼의 외화라도 절약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기사들을 보도하던 때였다.

그러면서도 기자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적지 않은 외화를 ‘신나게’ 잃고 있었다. 고위 공직자는 기자들에게 진수성찬을 베풀더니, 만만치 않은 팁까지 신용카드로 긁어대고 있었다. 기자들은 외화를 펑펑 뿌리고, 고위 공직자는 펑펑 쓰고 있었다.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쓸 용기가 없을 돈이었다. 그런 돈을 기자도, 고위 공직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쓰고 있었다. 기자도, 고위 공직자도 ‘닮은꼴 인종’이었다. 경상수지를 더욱 해치는 데 한몫을 거들고 있었다.


<이 글은 도서출판 지식공방에서 펴낸 저서 '촌지'를 약간 수정, 보완해서 재록하는 것입니다>

김영인  belly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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