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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내내 ‘고기 먹는 날’
  • 이정선 기자
  • 승인 2018.06.04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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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이정선 기자]프랑스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티누스는 원래 헝가리 출신이었다. 어렸을 때 로마로 유학, 그리스도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부친은 마르티누스를 기병대에 강제로 입대시켜버렸다.

군인이 된 마르티누스는 프랑스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걸인에게 자신의 망토를 절반으로 잘라서 나눠줬다. 그 날 밤 꿈에 망토 조각을 두른 그리스도가 천사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리스도는 “그대가 망토 조각을 나눠준 걸인이 바로 나였다”고 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만난 마르티누스는 제대 후 다시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헝가리로 돌아와서 부모에게도 전도했다. 마르티누스는 이후 프랑스로 가서 수도원을 세웠다.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래서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받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 마르티누스를 스페인 사람들은 ‘구두쇠’ 프랑스 수호성인이라고 깎아내렸다. 자비심 많은 스페인의 성인이었더라면 망토를 절반만 잘라주지 않고, 아예 통째로 벗어줬을 것이라며 ‘짠돌이’ 성인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어쨌거나, 마르티누스는 축일(祝日)이 11월 11일이라고 했다. 이날은 축일이면서 ‘돼지 수난일’이기도 했다. 기르던 돼지를 모조리 잡아 햄을 만들기 때문이다. 유럽의 돼지에게는 끔찍한 날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있다. ‘삼겹살데이’다. ‘3’이 두 번 겹치는 날이라 ‘삼겹살데이’라며 너도나도 삼겹살을 먹자고 한 날이다. 9월 2일에는 돼지고기를 ‘구이(92)’로 만들어서 먹는 날이다.

6월에는 그 ‘수난일’이 사흘 내내 계속되고 있다. 4일은 ‘육포데이’다. 포를 떠서 먹는 날이다. 5일은 ‘육우데이’라고 했다. ‘육우’니까 소고기를 의미하는 것일 듯했다. ‘현충일’인 6일은 ‘육육데이’다. ‘고기 육(肉)’이 두 번 겹치는 날이니 먹지 않을 수 없다. 애당초 돼지고기를 먹는 날이라고 했는데, 상술은 거기에 한우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경건하게 보냈으면 싶은 ‘현충일’도 아랑곳없다.

닭도 안전하지 못하다. 닭을 불러 모을 때 ‘구구’라고 한다면서 ‘9월 9일’을 ‘구구데이’로 삼았다. 닭고기를 먹는 날이다. 닭은 ‘꼬꼬’가 아닌 ‘구구’가 되었다.

이 ‘구구’는 또 한 번 이용되고 있다. 1월 1일부터 99일째 되는 날인 4월 9일을 백일(白日)로 삼아 ‘화이트데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얀 닭고기를 먹는 날이다. 백색 고기(白色肉)인 닭고기를 먹어야 백수를 누릴 수 있다며 닭고기 소비를 권장하고 있다.

물론, 우리 농축산물을 소비해서 축산농가를 돕자는 ‘거룩한 뜻’도 있다. 그러나 닭으로서는 역시 끔찍한 날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것뿐인가 했더니, 물고기가 수난 당하는 날도 있다. ‘3월 7일’을 등 푸른 생선인 ‘참치데이, 삼치데이’로 지정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그나마 ‘수난일’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런 것도 없이 ‘먹자판’이다. 대형 마트는 수백 톤씩 쌓아놓고 할인 판촉 행사다.

이정선 기자  jslee@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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